"통강냉이라도 갖다 놓고 실컷 퍼먹을 수 있다면"

탈퇴한 회원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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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조선일보 선임기자)

제일 놀라운 것은 밤에 나가면 번쩍번쩍 전기 들어오는 것
아, 세상이 이렇구나…

"그저 소원이라면, 조선사람인 나부터도 마대 자루로 통강냉이를 갖다 놓고 퍼먹고 아이들도 배불리 먹고, 내일은 뭐 먹을까 걱정 안 해도 되면, 그러면 뭐든지 하라는 대로 다 할 것 같단 말이다."

쉰한 살의 여자는 미국 기자 앞에서 '소원'을 말하고 있었다. 중국 옌지(延吉)의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안이었다. 그녀에게서 역한 냄새가 났다고 한다. 콩으로 인조고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그녀를 차에 태워 몰래 데려왔다. 취재에 응하면 100달러를 준다는 말에 따라나선 것이다. 자기는 옷을 갈아입었고 몸에 그런 냄새가 밴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녀는 전직 교사였다. 청진의 한 인민학교에서 25년간 근무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안 나오기 일쑤였다고 한다. 배가 고파 버틸 힘이 없어 그렇다고 설명했다. 오후 수업은 아예 없어졌다. 그녀의 딸도 중학교 3학년 때 그만뒀다. 아이들만 안 나오는 게 아니라 교사들도 그랬다. 교사 월급으론 쌀 1kg밖에 살 수 없었다.

6년 전 그녀는 학교를 떠났다. 장마당에서 시래기 죽에 국수를 넣어서 팔았다고 한다. "미역이나 시래기 같은 것을 삶아 강냉이 국수 한 사리를 부숴 넣어 국수가 밥알처럼 툭툭 끊어지면 그렇게 먹는다."

남편이 사고로 죽자 그녀는 올 초 중국으로 나왔다.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근심하지 말고 기다려라"는 말로 자녀와 작별했다. 그녀는 친척집인 무산(茂山)에서 열흘을 걸었다. 모르는 길이었다.

"가진 게 없으니 막무가내로 왔다. 사람에게 물어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넜다. 여기서 제일 놀라운 것은 밤에 나가면 번쩍번쩍 전기 들어오는 것이다. 아, 세상이 이렇구나."

그녀가 떠나온 청진에서는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왔다. 조선중앙방송에서 '대중교양'을 하는 시간대였다.

"그저 체육도 일등, 노래와 예술도 일등, 우리가 제일 잘하는 줄 알았다. 우리나라가 잘못해서 우리가 굶는다는 생각을 안 했다. 북한에 있을 땐 명절이 돼야 돼지고기 1kg을 사먹는데…, 내 여기서 고깃국을 먹다가도 자식 생각에 입이 떡떡 막힌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에서 최근 펴낸 북한 주민 인터뷰 자료를 읽고 있는 중이다. 지난 4월 미국 기자와 함께 녹음한 내용을 그대로 풀어놓은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온전한 '탈북자'들이 아니다.

 

먹고살기 위해 잠깐 두만강을 넘어왔다가 도로 넘어갈 것이다. "아직은 사회를 배반하고 나온 사람이 아니다"고들 스스로 말한다. '중국 자본물'이 들거나 한국에 와서 바뀐 모습이 아니라, 현재 북한 주민들의 '민얼굴'을 엿볼 수 있다.

"수령님이 죽었을 때 가슴이 미어졌다.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고. 임금이 돌아가시면 사람들을 같이 땅에 파묻었지 않는가. 그해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다.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그 생각이 딱 들었다."

"언젠가 뉴스에서 김정일이 기차에 내려서 다리 한쪽을 저는 것을 보니, 속으로 가슴이 아팠다. 우리 생활이 이렇게 곤란하게 됐지만."

"차를 타고 싶다든지 여행을 가고 싶다든지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배불리 먹고 가족들이 화목하게 살면 된다. 다른 나라에 가기를 원치 않는다. 부끄럽지만 전기밥솥 전원 켜는 것도 모른다."

"2012년 강성대국의 해(김일성 출생 100년), 그때 가서는 나라가 번영해진다고 하니 허리띠를 졸라매고 그때만 기다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육성(肉聲)도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머리로는 다 안다. 저 북쪽의 실상은 세월이 가도 그대로다. 다만 우리 자신이 그 엄연한 '사실'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삶은 더 이상 우리에게 절실하지도 안타깝지도 않고 한낱 마음을 울리지도 못한다. 그들을 짐승의 지경으로 가둬놓은 배부른 독재자에 대한 분노도 이제는 없다.

한반도의 장래를 어둡게 만들어온 것은 북한 세습 독재자들을 '우군'으로 삼아 이익을 얻으려는 정당뿐만 아니다. 요란하게 원칙만 떠들어댈 뿐 장기 전략이 없는 대북정책뿐만도 아닐 것이다.

 

어쩌면 더 위험한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북쪽에 사람들이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마대 자루로 통강냉이를 갖다 놓고 퍼먹는 게 소원이라는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식상하고 아무 관계 없는 존재가 됐을 때다./NKchosun


201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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