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걸 모릅네까" - 북한 젊은 경제학자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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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전략센터는 북한주민의 자유와 인권을 되찾고, 북한 내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북한전략센터는 전문가들과 함께 통일 전략을 연구하고, 미래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인재 양성활동, 북한 내부의 민주화 의식 확산사업과 북한 인권상황을 알리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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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이화여대 교수·북한학)
때로 때때로 그가 그립다. 특히 목련이 피어날 무렵이면.
여러 해 전 이맘때쯤 어디에선가 그를 만났다. 혹시라도 그에게 피해가 갈까 봐 애매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북한의 젊은 경제학자였다. 잘생긴 그는 영어 또한 제법이었다.
북한경제의 미래에 대해 발표할 때 목소리엔 생기가 돌았다. 자신감이 넘쳤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 절로 묻어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말을 섞기를 피했다. 남쪽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 탓이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외국여행이 처음인 탓이었는지도. 어쨌든 그는 환영만찬 내내 말이 없었다.
회의는 여러 날 계속되었다. 그를 만난 둘째 날, 헤어지면서 나는 책을 한 권 주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한국개발연구원의 연차보고서였다. 전해에 수행한 연구의 요약을 담은 것이었다.
북한경제에 대한 논문도 여러 개 포함되어 있었다. “한번 보십시오. 남쪽 학자의 분석이니까.” 무심하게 그는 책을 받았다. 역시 아무 말 없이. 사실 받을 것이라고는 기대 안 했다. 주니까 받은 것일 수도 있고, 학자적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다. 자기네 경제를 바라보는 남쪽 시각이라니까.
다음 날 아침, 회의장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인사를 해도 받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듯, 으레 그런 스타일이려니 했다. 말을 안 한다고 내가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불쑥 그가 다가왔다. 점심이 끝나고 회의장 밖에서 잠시 나른한 공기를 즐기고 있는 참이었다.
“담배 하나 주시라요.” 의외였지만, 반가웠다. 우리는 벤치에 함께 앉았다. 머리 위 목련나무에서 향기가 은은히 내려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의 눈엔 실핏줄이 솟아 있었다. “피곤해 보입니다.” 그는 주위를 살폈다. 우리뿐이었다. 그가 답했다. “조 선생 때문입니다. 조 선생이 준 책 때문에 잠을 못 잤단 말입네다.” 한번 말문을 여니 그는 달변이었다.
그는 두 가지 이유로 밤을 새웠다고 했다. 첫 번째 이유는 황당했다. 남쪽에서도 ‘공화국’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이유는 내가 감격스러웠다. 자신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어서 밤새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는 몇 가지 세부적인 질문도 했고 반론도 폈다. 그날 저녁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학자적 유대감을 서로 느끼고 있었다.
환송만찬이 끝나고 자연스레 끼리끼리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다. 우리 둘만 이야기한다고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이국(異國)의 도수 높은 술을 몇 잔 나눈 후, 짐짓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 전 종합시장 설치의 배경이 무엇이냐고. 사회주의를 지키겠다면서 시장은 왜 허용했느냐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시장은 점점 커질 것이고 결국엔 계획경제를 무너뜨릴 텐데, 어쩌다 ‘공화국’ 경제가 이 지경까지 되었느냐고. 북한 당국의 생각도 궁금했지만, 젊은 학자의 개인적 견해도 알고 싶어 의도적인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황했다. 그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눈물을 훔쳐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경제 상황, 그런 제안을 낼 수밖에 없는 심정이 오죽했겠습네까.” 젊은 혈기에 술기운까지 퍼지니 순간 울컥했던 모양이었다. 미안했지만, 나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갔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요.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시장경제를 허용하는 겁니다. 필요한 건 장터가 아니라 시스템의 변화란 말입니다.” 그가 나를 노려봤다, 한동안. 화가 치미는 듯했다. 그러더니 낮지만 강하게 말했다.
“누가 그걸 모릅네까. 그래서 그 정도 제안밖에 할 수 없었던 그 심정을 아느냐고 물었지 않았습네까.” 그리고 일어서 나가버렸다. 당혹스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북한에도 현실을 제대로 보는 학자가 있구나.
다음 날은 헤어지는 날이었다. 그와도 악수를 했다. 짧은 인사를 건넸다. 서먹한 탓도 있었지만, 눈이 많은 탓이기도 했다. “다음엔 충분한 토론을 합시다. 남북 협력에 대해서도 논의하고요.”
그는 말이 없었다. 다만 악수를 한 손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충분한 답이었다. 얼마나 답답하랴. 조국의 안타까운 경제상황과 이를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 떨어지는 목련꽃잎 사이로 북한 대표단의 버스가 떠났고, 나는 빌었다. 그의 안녕과 힘찬 성장을. 그리고 그와 같은 학자가 부디 많아지기를.
그러나 요사이 북한의 경제정책은 거꾸로 돌아가고, 그래서 나는 그가 부쩍 그리워진다. 더욱이 이렇게 목련이 싹을 내미는 무렵에는./Joins
2010-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