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단체 후원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는 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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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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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NKSC

2010-03-31 12:33:12  |  조회 1361



명진의 “악어의 눈물”

명진의 일요법문 발언 비판

 

선진한국통일연구원 한소리(객원기자)

 

현실 사회에 대한 인식을 하는 지도자라면 현재 상황이 평안히 수도만 할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산속에서 자신의 청정한 내면을 지키기 위해 수도를 하는 종교지도자가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명진은 법정과 또 다른 불교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명진은 지난 3월 28일 봉은사 법문에서 자신을 한국불교의 희망으로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발표했다. 명진은 법문을 시작하면서 천안함이 침몰하는 암울한 국가적 상황에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기가 미안했던지 “봉은사의 직영 문제를, 주지 욕심 따라서 그런 모습을 얘기하려니까 입이 안 떨어지고 오늘 아침 법당에 들어오면서 천일이나 기도를 했는데 왜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이래야 하는가. 내가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법한 ‘악어의 눈물’을 보였다.

 

정말 명진 자신의 말대로, 그가 한국불교의 희망이 되기로 작정하였더라면 진정 희망이 될 국민들의 마음에 희망과 소망이 될 법문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명진의 법문 내용에는 천편일률적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치함을 드러내놓고 있다. 그도 명색이 불교지도자란 사람인데 지도자로서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행태는 자신이 혼란의 와중에 있고 그 원인이 자신에 의해 기인되어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소치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명진이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식이 진정 자신과 타인을 위해 무용한 일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명진이 예수님에 대한 그의 지식을 자기자신을 합리화하는데 사용되지 않고 올바로 인식되기만 하였어도 적어도 국가의 암울한 사태가 발생된 직후인 28일의 법문에서 자신의 욕심을 사과하고 종단의 화합을 위한 방안을 내놓았을 터이다.

 

명진의 자신을 비호하면서 이기적인 욕심과 욕망을 합리화하는 기만적이고 가식적인 태도는 천안함의 침몰에 대한 눈물이나 동생의 순국조차 그 빛을 잃게 하고 있다. 명진의 속내를 언급하는 와중에서 이런 사실을 이용하는 작태는 그의 숨겨진 허망한 이권 다툼이나 자기 자신의 주장에서 물러설 기미가 없음을 확인하게 한다.

 

명진이 불교의 내분과 분란을 일으키면서도 내놓지 않으려고 안감힘을 쓰는 이유가 어디에 있나? 그가 말하듯이 불교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 왜 봉은사여야 하는가? 명진이 그토록 봉은사 직영에 반대하고 다른 의견을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명진의 태도가 일반인들의 눈에는 돈과 권력을 추종하는 승려의 정치행각으로 비춰지는 것이 사실이다. 명진이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면 지금과 같이 봉은사의 이권다툼을 정치적인 문제로 번지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막가파식의 대처방식, 자신의 술책을 위해서 정치권을 끌어들여서 한국사회에 정치사회적 분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명진이 정치사회적으로 일으킨 분란에 대해 오히려 정치인들이 종교지도자보다 더 개방적인 태도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오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한 논객은 “승려들이 타락했으면, 권익을 다투는 직업을 가진 정치인들로부터 도덕적 충고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는가?”(올인코리아, 조영환 편집인)라고 개탄하였다.

 

지도자의 자질은 내부 결속력에 대해 내부의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내부의 발전을 위해 기본적인 상호약속일 것이다. 그러나 명진은 이런 기본도 안되있는 자이다. 그가 내부적인 신의조차 지키지 못하는 자라는 사실은 특히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협의회의 결과를 보아서 알 수 있다.

 

29일 오후 부산 범어사에서 조계종 교구 주지협의회는 "종헌 종법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진 종앙종회의 봉은사 직영 지정 승인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은 종단 내부의 사안을 외부의 압력이라고 주장하는 언행을 즉각 중단해야 하며 그런 언행이 오히려 외부 세력의 개입을 초래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극히 종단 내적인 필요와 의지에 의해 이뤄진 종교적 행위(직영사찰 문제)를 근거없이 왜곡하거나 과장해 정치적 소재로 삼는 행위도 중단해야 한다. 봉은사 신도회는 그동안의 사찰 운영 등의 성과를 소중히 하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한편 종단의 방침과 종무 집행에 적극 협조하길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명진은 그의 법문에서 “거짓이 횡행하는 세상, 진실이 묻힌 세상”을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왜 거짓이 횡행하고 있고 진실이 묻힌 세상이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지도자로 자처하는 명진 자신부터 성찰해야 한다. 지도자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견, 동료 지도자들의 의견조차 무시하고 몽니로 일관하는 태도가 현재와 같은 세상을 만들지 않았을까?

 

명진의 태도는 불교계의 구성원들조차 호도하고 있으며 그의 전력으로 보아서 봉은사 직영 반대에도 그의 숨은 의도가 없다고 볼 수 없다. 무소유를 주창하는 수행자로서 욕심의 와중에서 자신도 욕심을 내고 있는 꼴이 아닌가! 봉은사를 조계종 직영사찰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불교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종교계의 이권싸움을 물타기 위해 정치권으로 번지게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종교지도자로서 수치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자신의 행태가 이 사회를 “거짓의 세상, 진실이 묻히는 세상”으로 만드는 원흉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또한 명진이 자신을 좌파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점에 대해서도, 그의 전력이 좌파임을 보여주고 그의 행태가 그러한데 이를 은폐하려는 의도에 대해 비난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명진의 과거 행적을 보면, 그는 북한의 선군(先軍)정치까지 美化해 온 월간지 「민족21」 발행인이자, 조총련과도 연결되어 온 민족공동체추진운동본부(민추본) 집행위원장이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후원회장도 맡았었다. 범민련은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폐지-연방제 통일」 등 북한정권의 대남노선을 추종해 온 이적단체(利敵團體)이다.

 

2005년 2월 27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범민련 9기 중앙위원 총회에 명진은 참석하여 『미국의 악질적인 행동을 고발하는 선봉에 범민련이 서있다』며 『나는 그런 범민련을 후원하게 된 것을 당대와 후대까지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는 발언을 2005년 2월27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 직후에 했다는 <통일뉴스> 2005년 2월 28일자 보도가 있었다.

 

이런 정황을 살펴보면, 명진이 그렇게 자유롭게 자신의 좌파 정체성을 드러낼 때와 지금은 달라진 것인가? 좌파들의 속성인 칠색조처럼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자신을 숨기는 전략적인 태도인가? 명진의 행태는 이명박 정부 흠집내기로 자신이 의도를 교묘히 이용하는 좌파의 술책에 불과함이 그의 태도에서 나타나지 않는가?

 

만약 그가 진정한 수행자라면 현재의 불교계 내부의 문제를 봉합하는데 열심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을 비난함으로 자신에게 쏠리는 비난을 호도하고 있으면서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는데 열심인 것이다.

 

명진이 북한 동포들의 아픔을 함께 하려고 했다고 하는 그의 태도에서도 그의 이런 교만함, 기만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두렵다. 물론 그가 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 공산당들은 기회만 있다면 모든 사람들을 이용하는 집단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명진은 우매하기도 한 것이다.

명진이 김성광 목사와 이명박 대통령를 비난한 내용을 보면, 결국 자신이 예수님처럼 가난한 자를 직접적으로 구원하는 의인이라는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의도가 좌파라고 매도당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굶주리는 사람에 대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비판하는 것은 내미는 손길의 의도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갖는 것이다.

 

명진이 어찌 예수님의 손길과 같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명진뿐 아니라 우리 모두,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고 저지를 수 있는 모은 행동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명진이 진정한 수행자라면 그런 기본적인 것을 불가의 가르침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명진의 가난한 자를 위한 자신의 구원 태도나 행동을 예수님에 비교할 수 없다. 그가 예수님과 자신의 태도를 감히 두려움 없이 언급함이 그의 망발임을 우리는 경고한다. 인간인 우리가 어찌 자신도 알게 모르게 짓는 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명진 자신은 그런 죄와 우매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자신하는 자체가 오히려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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