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북한의 빈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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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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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장진성

2010-03-17 23:56:04  |  조회 1666


2004년 한국에 입국하여 새로운 삶을 살면서 나를 가장 놀라게 했던 점은 부유한 자유민주국가임에도 빈부격차는 북한보다 덜하다는 점이다. 물론 국부(國富) 격차로 양과 질적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북한 부유층은 일반적 수준의 형평성에서 크게 탈선한다.

 

그 이유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장 부유한 왕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재북 당시 김정일 “접견자” 신분으로 수령문학창작에 필요한 특권층과 그 가족을 취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특히 김일성종합대학과 당 통전부 근무 과정에 북한 체제를 고집하는 계층의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을 통해 나는 북한의 천국을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그래서 300만 아사의 지옥에 분노하여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를 쓸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남한에는 북한의 하부실태는 조금 알려져 있지만 북한 부유층에 대해서는 김정일 한 사람의 부귀영화에 많이 가려져왔다.

 

모순을 모순으로 알자면 양쪽을 다 보아야 한다.

더욱이 김씨왕조의 불합리한 체제에서 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지? 그 근본적 원인을 알자면 그 체제를 유지하려는 권력계층의 이해관계와 그들만의 특혜를 우선 알아야 한다.

 

■ 김정일의 선물등급에 따라 달라지는 신분차별

 

남한의 특권은 부와 명예에 의해 규정된다면 독재자의 유일지도 권한이 권력을 분배하고 특권을 부여하는 북한에선 개인의 부와 명예란 곧 김정일의 신임이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김정일이 한번만 매섭게 쏘아봐도 그 가문은 3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더욱이 북한 부유층은 충성하면 3대가 흥하고 배신하면 3대를 멸족시키는 3대관리제도가 그 어느 계층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누가 언제 어떤 선물을 받는가에 따라 측근의 서열이 정해지기도 하기 때문에 김정일은 선물의 차별화로 자기 믿음의 무게를 강조하여 충성경쟁을 유도한다. 가장 최상급 선물 대상은 특권층이다. 북한 부유층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특권층은 크게 두 부류이다.

 

첫째는 김정일 최측근으로서 권력형 특권이다. 이 권력형 특권층은 김정일의 업무 네트워크에 항시 접속한 인물들로서 언제든 김정일께 자기 의사를 전할 수 있으며 체제불만을 품지 않는 한 자기의 신분과 지위를 대물림할 수도 있다. 또한 인사권과 행정 결정권을 남용하여 북한 내 모든 이권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구조적 특혜가 있다.

 

둘째는 김정일에게 돈을 많이 갖다 바친 공로로 외화사용의 합법성을 인정받은 자본특권층이다. 북한은 90년대 초반까지 자국민의 달러사용을 엄격하게 통제해 왔다. 단 김父子에게 많은 돈을 헌금한 교포들과 그 친인척들에게만 특수성 명목으로 달러와 엔 사용을 허락했다. 이것이 사실 오늘날 북한 원화를 완전히 지배한 달러파워의 시초로 작용하기도 한다.

 

초기 북한 내 자본특권층은 교포 친인척들이 주류를 이루었었다. 그러나 교포사회의 세대교체와 조총련 약화로 최근에는 국내파들에게 그 우선순위를 양보했다. 국내파란 북한 시장을 주도하는 과정에 많은 외화를 벌어들여 갑부가 된 권력형 특권층 자녀나 친인척들을 의미한다. 특히 그 중에는 대남공작부서 후손들도 꽤 많다.

 

당 대외연락부같은 경우 해외거점을 만들기 위해 이미 북한 정권이 60년대부터 당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신분세탁과 위장을 걸쳐 해외에 정착시킨 기업인이나 상인들이 많다. 이들은 침투국의 국적을 취득한 후 많은 외화를 벌었고, 심지어는 북한에 인질로 잡혀있는 자녀들에게 상속권까지 주장하고 있다.

 

통제관리 기능을 유지할 목적으로 기업세습이 아닌 당의 지명 권한을 고집하고 있는 북한 노동당과 그들 중 일부가 한때 갈등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김일성 시대에 파견됐던 고령인물들인데다 해외 당 대남공작부서의 뿌리 역할을 하고 있어 김정일은 우대차원에서 그 후손들에 대한 자본특권을 최대한 허용하고 있다.

 

김정일은 이 두 부류의 특권층에게 명절마다 주는 이벤트성 선물이 아니라 삶, 자체가 선물인생이 되게 해준다. 외화바꾼돈 환율이 안정적이던 1993년까지는 트렁크마다 일정 금액의 돈을 넣었지만 환율이 붕괴된 이후부터는 금화와 외국 명품으로 대체됐다. 북한조선중앙은행은 국가기념일이나 김父子 정주년에 맞춰 금 주화를 발행하는데 이 중 상당수가 김정일 명의로 최측근들에게 배당됐다.

 

특권층 부인들과 자녀 결혼식을 위해 고가의 다이아몬드도 정기적으로 수입하여 선물하군 했다. 아마 탈북자 2만 명 중 금수산기념궁전에 보관 된 김일성 관을 직접 본 사람은 몇 명 안 될 것으로 안다. 그 이유는 북한 정권이 신격화 차원에서 김일성 시신을 보는 것조차 영생하는 신의 접견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김일성 사후 북한 정권은 전체 인민에게 금수산기념궁전 재건을 위한 충성의 외화헌납운동을 호소했는데 그때 북한 특권층이 가장 먼저 2.5Kg의 다이아몬드를 모아 바쳤다. 김정일의 선물은 훼손하거나 분실해서도 절대 안 되기 때문에 김일성 시신을 보관할 관 치장에 써달라며 다이아몬드와 함께 김정일께 충성의 결의문을 썼다.

 

방북 한국인들과 외국인들 중 특별히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에 초대됐던 사람들은 이미 다 알겠지만, 김일성 머리 쪽 관 앞부분엔 붉은 색 조명에 반사되어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그림 하나하나를 김정일 최측근들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어른 머리 크기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장이다.

 

김정일은 국가기념일 뿐 아니라 측근들의 가족 중 생일이거나 결혼식 등이 있을 때에도 세심히 챙겨준다. 심지어는 자녀 대학입학이나 졸업을 축하하여 선물공세를 하기도 한다. 당 작전부장 오극렬의 5번째 딸 오영희가 1989년 9월 평양음악무용대학 작곡학부에 입학했을 때에는 건반이 상아로 된 독일 그랜드피아노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렇듯 북한 특권층은 일반 주민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최고의 선물 인생을 살기 때문에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앙당 과장급 이하 간부들의 선물은 명절마다 직위별로 분류하여 전국에 일괄적으로 내려 보내는 집체선물이어서 공개될 수밖에 없다. 사실 그 선물들의 가치만 따져 봐도 만만치 않다.

 

해마다 조금씩 다를 뿐 설날이나 김父子 생일마다 메뉴가 거의 똑같은 중앙당 본부 직원들(2만명)에게 보내는 첫 번째 선물박스에는 레미마르탱, XO, 헤네시, 나뽈레옹을 비롯한 고급양주 6병과 이태리 양복천, 두 번째 박스에는 곰열, 녹용, 인삼, 사향을 비롯한 한약재들, 3번째 박스에는 외국 가공식품들이 들어있다.

 

김정일의 선물등급은 중앙비서급 대상,(각 지방 도당 부장 이상급과 중앙 기관 및 단위책임자들, 북한 최고의 예술인, 과학자, 체육인 등 포함) 중앙 국장급 대상들(각 지방 도당 과장 이상급과 중앙 기관 및 단위 주요 국장, 부장급, 전국 공로자들 포함)로 분류된다. 이 선물들은 신분등급에 따라 각각 내용이 다르게 포장되어 주요 명절마다 수십만 박스씩 전국으로 배달된다.

 

김정일의 선물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스위스 금시계이다. 70년대부터 김일성, 김정일 “접견자”들에게 금시계 선물을 전통화 한 북한 노동당은 아마 스위스의 최대 고객일 것이다. 1999년에는 고난의 행군을 혁명적 낭만과 정서로 극복하는데 기여했다며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 480명과 만수대예술단 국가독창조, 국가희극단, 등 700명의 예술인에게 개당 만 불이 넘는 롤렉스 금시계를 한꺼번에 선물로 준적도 있다.

 

2002년 4월25일에는 스위스에서 별도 주문한 김정일 이름이 새겨진 회중금시계 200개를 군 장성들에게 야전시계라며 선물한 적도 있다. 가장 말단 지방 간부들과 현지시찰 단위들에 보내는 김정일의 최하위 선물들은 국내산 상품 및 가공식품이거나 과일박스이다. 보관이나 운송과정에 잘 상하지 않는 수박이나 참외, 사과, 배가 주류인데 제주도에서 감귤을 보내면서부터는 과일선물에 감귤이 추가되기도 했다.

 

북한 정권이 국가명절이나 김정일 생일에 맞춰 제주도에 감귤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정일 선물들은 전국 주요 공장과 농촌들에 설치된 수십만개의 1호작업반들에서 생산된다. 사실 북한의 국가유일경제는 김정일의 선물정치를 위한 이 1호작업반 때문에 붕괴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호계획은 김정일 신격화 차원에서 국가계획위원회가 기획한 인민경제계획보다 더 엄격한 원칙과 법적 구속력을 가졌다. 더욱이 선물경제에 뒤이어 군수산업 제2경제도 우선시되며 자연히 인민경제는 하위권으로 밀려나 생산과 공급의 균형이 완전히 깨지게 됐고 결국 북한 경제는 김정일의 기형적인 당경제로 완전히 기울어졌다.

 

2000년 이후 북한에서 시장이 확대되면서 사실 하위등급의 김정일 선물들은 충성 유도용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 돈만 있으면 시장에서 언제든 똑같은 물건들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더는 자랑거리로 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북한 정권은 각 무역회사들에 선물용 외국 상품들을 구매해 오도록 충성의 외화벌이 계획을 강요한다.

 

또한 남한이나 국제사회에서 보내는 대북 지원용품들도 선물가치로 많이 활용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평양시 형제산구역 서포동에는 2만5000평 규모의 중앙당선물가공공장이 있다. 여기에는 김정일 선물용도로 사용할 각종 상품들과 수많은 대북 지원용품들이 실려 온다. 상품을 보관하는 창고개념이지만 공장이라고 간판을 붙인 이유는 모든 외국 상품들의 포장을 하나하나 뜯어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란 명찰을 새롭게 붙이는 작업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시절 남한에서 보낸 칼라 TV 수천대도 여기를 걸쳐 軍에 선물됐다. 작은 사이즈 TV는 “금강산”으로 탈바꿈되어 군부대들에 보내졌고 32인치 TV는 북한의 혁명전통 뿌리를 뜻하는 “밀영”이란 이름으로 총정치국과 총참모부 군관들에게 선물됐다. 김대중 햇볕정책이 본격화되던 2002년에는 이 중앙당선물가공공장을 더 확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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