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실패를 대신해 희생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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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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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nksc

2010-03-24 09:25:28  |  조회 1472



/강철환 조선일보 동북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사)북한전략센터 대표 

 

1992년 북한 경제팀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했던 김달현 전 정무원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은 김일성 가계(家系)에 속한 엘리트로 김일성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경제통이다.

 

그는 서울을 방문하고 돌아간 뒤, 북한이 살길은 개혁·개방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름대로 북한 경제 회생을 위해 노력하다 2000년 8월 자살했다.

그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 해결의 관건인 흥남비료공장을 정상화시키려다 김정일의 눈 밖에 났다. 일제(日帝) 강점기에 건설된 흥남비료공장은 한 해 최대 160만t 이상의 비료가 생산되던 북한 농업의 명줄과도 같은 공장이었다.

 

그 공장이 시설 노후화로 생산량이 떨어졌다. 만약 북한 경제에 파국(破局)이 와도 비료만 정상적으로 생산된다면 먹는 문제는 최소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는 흥남비료공장 재건(再建)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된다.

흥남비료공장을 보수(補修)할 최신 설비를 들여오는 데 최소 1억달러가 들어간다는 것을 파악하고 직접 김정일에게 이 문제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얼마 후 노동당 조직부가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집회를 열었다.

 

영문도 모르고 이 집회에 참석한 김 부총리는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이 막말로 자신을 규탄하자 할 말을 잊었다. 노동자들은 "김달현은 우리 혁명계급을 뭐로 보는가" "그는 변절자다"라고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그는 1993년 다 망한 2.8비날론 공장의 지배인으로 좌천됐다가 보위부가 자신을 연행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살한다. 흥남비료공장 노동자들은 김 부총리의 자살 소식에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당시 김 부총리 계획대로 흥남비료공장이 보수됐다면 북한 주민 수십만, 수백만이 굶어 죽는 대참사는 어느 정도라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김정일은 김일성 묘인 금수산기념궁전 건축에 8억7000만달러를 쏟아부으면서도 끝내 비료공장은 방치했다. 그 결과 지금 흥남비료공장은 거대한 고철 더미가 됐다.

1997년 평양시 낙랑거리에서 또 한 명의 노동당 간부가 공개 총살당했다. 그는 김일성이 총애했던 농업전문가인 서관히 노동당 농업담당비서였다. 약간의 비리를 트집 잡힌 그는 대량 아사(餓死) 사태가 발생하자 김정일의 '희생양'으로 지목됐다.

 

수만명의 평양시민 앞에서 '미제(美帝)의 고용간첩'이라는 엉터리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보위부는 "서관히 때문에 우리가 굶어 죽었다"는 헛소문을 만들어 퍼뜨렸다. 당시 북한 사람들은 서관히를 저주할 뿐 김정일에 대해서 증오심을 가질 수 없었다.

남한에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평양에선 또 희생양이 생겨났다. "친북좌파 정부가 재(再)집권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웬 이명박이냐"는 김정일의 분노에 최승철 전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수용소로 끌려갔다.

최근 화폐개혁에 대한 실패 책임을 지고 노동당 재정부장 박남기도 총살됐다는 설이 돌고 있다. 화폐개혁과 같은 엄청난 일을 박남기가 주도적으로 벌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화폐개혁의 완전한 실패와 그 후유증으로 체제가 흔들거리고 있다. 이제는 북한 인민들도 총살당하는 사람들이 죄없이 죽는 것이란 사실쯤은 다 알게 됐다. 그들이 누구 대신 죽는 것인지도 다 안다./NK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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