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주민들의 욕망을 투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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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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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지도자들은 기존의 전형적인 모습을 고집스럽게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최근 노동당 인사들의 연이은 숙청과 지난해의 핵실험 실시가 대표적인 예들이다. 하지만 이런 과시적인 행동 뒤로 북한의 경제 지형이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과연 이런 변화는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 또 다시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이번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고모부 장성택이 정치국 확대회의 도중에 전격 체포된 것이다. 체포에서 재판, 처형까지 단 4일 만에 모든 일이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1946년생인 장성택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고위 관직에 올라 그동안 북한 정권의 2인자로 군림해왔다. 북한 언론에 따르면 이번에 그는 ‘국가전복음모행위’ 혐의로 처형됐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범행 성격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점을 볼 때 정치적 숙청론 쪽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일부 서방 언론은 장성택의 외도를 문제 삼았다. 또 일각에서는 그가 굶주린 사냥개들에게 산 채로 잡아먹혔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북한은 종종 진실을 증언하는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린다던 북한전문가 브루스 커밍스의 말이 이번에도 여실히 입증된 셈이다.

속전속결로 진행된 이 현란한 ‘사법 쇼’(실제로 장성택의 체포 장면을 TV로 중계했다)를 지켜보노라면 북한의 사법체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변호인이 오히려 자기가 변호해야 할 피고인을 비난하거나, 판결을 내린 재판관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관행은 설령 그대로라 할지라도, 적어도 이제는 재판 없이 죄수를 수감하는 일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0월 북한의 일부 재판소는 법률 개정을 앞두고 ‘정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결정적인 사건은 한국의 연합뉴스가 보도한 대로 북한이 정치범 수용소 6곳 중 2곳을 폐쇄하기로 한 결정이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북한 정권은 결코 ‘1인 지배체제’라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견고한 다수지배체제’(원문은 ‘polycracy·여러 사람, 정당 혹은 가족이 한 국가 체제 안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정책을 펴는 정치제도를 의미’한다-역주)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그래야만 1990년대 위기 동안 인민을 제대로 먹여 살릴 수 없었던 국가의 무력함, 군사 요새화 전략 유지, 경제특구와 사업가의 등장, 여러 국가기관 간 갈등 등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할 수가 있다. 국가의 무력함은 국가의 몰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정부기관의 약화를 의미할 뿐이다. 가령 경제위기와 기아사태가 발생한 동안 북한 주민 60%의 식량배급을 담당하던 정부기관이 대표적인 예다. 북한에서 흔히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대기근 사태는 1995~1997년까지 지속되며 북한 전체 인구의 3~10%에 달하는 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정말 인민을 위한 기구였는지 몰라도, 창설 50년이 지난 당시 북한의 식량배급기관은 인민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데조차 무력했던 것이다.

물론 북한 정권은 ‘미국의 공격’, 즉 지난해 미사일 발사 시험 이후 한층 더 강화된 대북금수조치를 위기의 원인으로 돌릴지 모른다. 실제로 대북금수조치는 북한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다.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이던 중국마저도 2013년 10월 100여 쪽에 달하는 대북 수출 금지 품목을 발표할 정도였다. 이에 북한의 ‘만수대 TV’는 일요일 저녁마다 방송되는 한 인기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의 불법 복제 문제를 집중 조명한 캐나다의 장편 다큐멘터리를 내보내기도 했다.

북한은 국가가 독점하는 언론매체를 동원해 이런 도식적인 해명을 줄기차게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제 북한 정권의 말을 믿는 주민은 아무도 없다. 모든 북한 주민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의 전란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기근이 창궐하고, 공공서비스가 실종되고, 밀매가 성행하던 당시 상황은 그야말로 전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동부 지역을 비롯한 재난 피해가 심각했던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 필사의 몸부림을 쳤다. 그들은 눈에 띄는 자원이란 자원은 모조리 약탈해 밀매를 하거나 장마당에 내다파는 등 온갖 방법으로 팔아넘겼다.(1) 에너지난으로 문을 닫은 공장들을 해체하거나, 공공건물에서 뜯어낸 철물들은 중국에 가져가 먹을 것과 바꾸기도 했다. 당시 북한의 국가기관은 현저히 약화되어 있었다. 심지어 치안 역할마저도 제대로 실행할 수 없었다.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밀매나 불법 월경을 시도한 사람에게 수용소행이 언도되는 사례는 현격히 감소했다. 물론 언젠가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밝힐 날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 특히 무능한 국가를 대신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전통조직들이 형성되었는지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어쨌든 그 사이 고난의 행군 시기는 기계가 멈춘 공장, 전기가 끊긴 마을, 눈으로 뒤덮인 황폐한 들판 등 몇몇 이미지로만 TV 화면 위에 그려질 뿐이었다. 이런 장면은 흡사 전쟁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정말 전시 상황과 다름없었다고 TV에서도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적이 존재했지만, 현 상황은 그에 비해 훨씬 더 호전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정부의 도식적인 해명 믿는 주민 없어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대체 북한 정권은 어찌하여 유력 인사를 체포해 처형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것은 정권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징후인가, 아니면 공고함을 나타내는 징표인가? 사실 북한 고위 권력층 사이의 갈등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수파 대 개혁파의 대립이라는 낡은 도식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요즘은 모두가 ‘개혁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둔한 관료도 더 이상 상투적인 담론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다. ‘고난의 행군’이 주민들이 정권의 선전술에 귀를 닫게 만든 것이다. 이제 정권의 허황된 약속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북한 정권이 줄기차게 우려먹는 일부 민족주의 수사, 가령 미군이 주둔 중인 남한과 달리 북한은 외국 군대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었다던가, 혹은 북한은 피해자(남북한 모두 자국이 외세 침입의 희생자라는 역사관을 지니고 있다)에 불과할 뿐이라는 식의 담론은 때에 따라 여전히 유효한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모든 주민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 사실 민심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품 공급이 원활한 상점들이다.

북한의 고위층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결코 권력기구를 장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상 국가 개혁에 대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다. 김일성은 ‘어버이 수령’이었고, 아들 김정일은 개혁의 화신이었다. 손자 김정은도 이 같은 계보를 계속 이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야만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2) 하지만 경제적 발전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그저 원활한 상품 유통에만 그칠 수는 없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순간은 북한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상을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야 할 때다. 여전히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끔찍한 참상이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상황은 상당히 호전됐다. 특히 최근 몇 달 동안 모든 게 급변했다. 상점 진열대에는 상품들이 가득 채워지고, 전기도 다시 공급되기 시작했다. 지난해만 해도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던 도시 외곽의 고층 건물들에는 요즘 밤새도록 불이 켜 있다. 그동안 북한 정권은 전방위로 각종 사업을 추진해왔다. 먼저 생산단위를 가족 및 친척 단위로 축소하는 농업 개혁을 실시했다. 이 같은 생산 증대 사업은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 한편 북한 정권은 군부(1백만 명)의 경제적, 재정적 이권을 성역처럼 보장해주는 대가로, 이른바 ‘선군노선’(막대한 군사비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 정권이 공식적으로 내건 슬로건이었다)을 포기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군부는 계속 특권을 누리는 대신 새로운 정책에 왈가왈부 참견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개혁의 주도권 잡기가 고위층 대립원인


요컨대 북한 지도층의 갈등은 중국식 개혁을 지지(시장과 일당체제의 병존을 주장)하는 자들과 기존의 당 국가 체제를 옹호하는 자들 사이의 대립구도로 이해해야만 한다. 중국식 개혁을 지지하는 자들은 소비를 내세워 모든 본질적 문제를 피해가려 한다. 가령 평양 상점에 상품이 가득 채워지고, 모든 도시 주민이 시장 활동에 참여하며, 중국 접경지대 사업이 번창하고, 경제특구 3곳(지도 참조)이 부상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치적으로 내세운다. 한편 대기근 사태로 완전히 신임을 잃었지만 아직까지 북한에 잔존하는 일부 당 국가 체제 지지자들도 모든 개혁에 대해 무조건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들의 권력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거부할 뿐이다. 분명 김정은은 현재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하지만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현재 대부분의 북한 경제 사업은 아무런 법률적 토대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 마디로 안전망이 없는 위험천만한 게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장성택의 처형은 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는 너무 친중국적이어서 숙청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까? 사실 한 종파를 견제하고 제거하기 위해 다른 종파를 이용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 자주 애용하는 고전적 수법이다. 제3의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여전히 주체성이 어느 정도 유효한 힘을 발휘하는 유일한 이데올로기적 요소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쨌든 이런 상황 속에서도 북한과 중국의 경제 교역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한 예로 2011년 북중 교역 규모는 (전년 대비-역주) 62.5%가 증가한 56억 3천만 달러를 기록했다.(3) 2013년 8월 첸 지안 중국 상무부 차관도 장성택의 방중 기간 동안 중국 기업의 대북 투자를 독려한 바 있다. 또한 인도에서 이집트, 인도네시아에서 태국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주요 경제 협력국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편 남한도 개성경제특구(개성공단-역주)를 매개로(비록 4~9월 김정은의 명령에 의해 잠시 폐쇄되기도 했지만) 북한의 두 번째 수출국 겸 수입국으로 자리하고 있다. 가령 2013년 남한의 대북 교역액은 모두 17억 1천만 달러(10% 감소)를 기록했다.

우리는 앞으로 북한이 개방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해볼 수 있다.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북한의 주요 투자국인 중국의 이익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의 거센 반발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이미 모든 카드를 다 써버렸다. 이제 남은 카드는 소비뿐이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이 지닌 무기는 무엇일까? 바로 에너지 개발이다. 위기 발생 때 낙후한 농업정책과 산림벌채는 물난리를 더욱 가중하는 요인이 됐다. 수해는 북한의 경제적 부(1975년까지 남한보다 우위)의 토대를 이루던 북한의 광산과 도로를 가차 없이 파괴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국익을 노린 지원) 덕에 북한은 상당 부분 위기를 극복했다. 물론 그렇다고 난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기술자들은 광산의 물을 완전히 말리는 작업에는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광산 시설이 노후한 만큼 복구 작업은 더욱 더딜 수밖에 없다고도 덧붙였다. 북한은 현재 다른 나라들과 다양한 경협 사업과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가령 의정부 남서쪽 부근, 중국과 마주한 지역에서는 신규 시추 작업에 착수했다. 또한 소규모 댐도 무수히 건설하고 있다. 평양과 선양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항공기만 봐도 현재 얼마나 막대한 규모의 공사가 진행 중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북한은 기존의 에너지 개발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 북한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아직 북한은 산업 활성화까지 추진할 단계는 아니다.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막대한 자본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 식량지원 대신 농업 개혁 협조 요구


북한 정권이 지닌 또 다른 무기는 농업 개혁이다. 여러 비정부기구(NGO)들은 가장 힘든 고비를 넘겼다고 말한다. 이제 이 단체들은 생산 수급에 차질을 빚을지라도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을 중단하고 대신 개발도상국의 경우처럼 북한에 대해서도 협력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요 국제기구를 상대로 설득하느라 분주하다. 현재 북한은 사상 처음으로(국가 통제가 아닌) 민간시장 요소를 도입한 (개인에게 토지 경영권을 부여한 개혁을 의미-역주) 개혁을 한창 추진 중에 있다. 또한 문어발식 협동농장도 이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임금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민간 기업 설립은 훨씬 더 힘든 개혁 과제가 될 것이다. 여전히 농업 분야에 많은 노동자가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기는 힘들지만 프랑스에서는 기계식 장비를 갖춘 농민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에 북한에서는 수백 명의 일손이 투입되고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와 대규모 수해가 발생한 시기 동안에는 심지어 간부를 포함한 모든 북한 주민이 도로 복구 작업에 동원되기까지 했다. 물론 아스팔트 포장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수도 평양에서조차 주민들은 손수 흩어진 잔해들을 모아 열판 위에 녹여 망치나 숟가락을 가지고 일일이 도로에 난 구멍을 메웠다. 이런 현실만 보더라도 북한의 기계화(혹은 재기계화)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가늠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이 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카드는 무엇일까? 바로 금융 및 교역 개방이다. 몇 년 전 등장한 ‘자유시장’은 이미 북한에서는 익숙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비록 평양의 통일시장처럼 제도화된 시장에 대한 사진 촬영은 여전히 철저히 금지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제도화된 시장 말고도 공식적인 법적 지위나 국영시장이라는 지위를 지니지 않은 탓에 무엇이라 정확히 규정하기 힘든 새로운 형태의 시장체계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여전히 식품,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신선식품은 많이 부족한 편이지만, 어쨌든 평양의 백화점에는 이제 의류에서 화장품, 전자제품, 휴대전화, 자전거 등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아무리 비싼 가격에도 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사실 북한의 백화점은 결코 특권층(nomenklatura·착취를 일삼았던 구소련의 특권계급-역주)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자유로운 환거래가 가능해지고 외환 보유자 누구나 원화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이나 호텔에는 대개 변동환율로 돈을 바꿔주는 환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이것은 암시장이 확대되는 것을 막아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자유시장 주변에 가면 환전을 해주겠다고 손님을 호객하는 50대 여성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수입품이나 고급상품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외국돈을 얻기 위한 목적 때문이지, 결코 환율 차익으로 이익을 보려는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사우나와 레스토랑을 갖춘 신식 건물 밀집 지역에 호화 상점들이 들어서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외국환이라면, 종류에 상관없이 전부 통용되고 전부 환영 받는다.

집단상점은 대개 공공과 민간의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거리 매대나 상점 안에 진열된 물건들을 보면 대충 어떤 종류의 상점인지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대개 고급 상품이 진열된 곳은 민영상점이다. 원칙적으로 대부분의 상점은 국가 소유이지만, 북한 전문가로 활동하는 역사가 안드레이 란코프(4)가 지적하듯이 실제로는 일종의 ‘법적 의제’(legal fiction·명백히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가정하거나, 본질이 다른 것을 일정한 법률적 취급에 있어서 동일한 것으로 보고 동일한 효과를 부여하는 일-역주)의 하나로 이해해볼 수 있다.

소비에 대한 욕구, 흥정에 대한 갈망, 위기를 벗어나야 할 필요성은 나머지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완수해나가고 있다. 황금평이나 라선과 같은 대규모 경제특구 근방에 자리하고 있는 중국의 접경도시 단둥과 연길은 장사를 하러 북한에서 넘어온 많은 상인들로 북적인다. 장사 규모는 사람 한 명이 이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항상 그렇듯 중국의 도시는 당국이 장려하는 이런 새로운 수요에 발 빠르게 부응하고 있다. 이를테면 단둥의 한 여행사는 단독으로 매해 중국인 4천 명의 북한 방문을 주관하고 있다. 이쯤 되면 북한 정권이 경제 발전에 필요한 자본 일부를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중국 쪽 접경지대인 지안에 가면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단기로 돈을 벌기 위해 찾아 온 북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한편 그보다 더 만나기 힘든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북한 정권이 대규모 국가 정책에 의해 중국에 파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중국에서 자유롭게 일하며 살도록 허가 받았지만 사실상 그들이 버는 수입의 상당액은 곧장 북한 정권의 수중으로 흘러들어가기 마련이다. 대개 벌목공이나 재봉공이 이 경우에 속한다. 사실 북한이란 나라가 세워지기 이전에도 이미 한인들은 만주나 시베리아 등지에서 이런 종류의 직업에 종사해왔다.



금융 및 교역 개방을 통한 시장자유화 꿈틀


북한은 확실한 경제적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현 지도부는 국가 정책을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령 외국기업과의 교역은 그때그때 현장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실정이다. 새로운 경제 여건에 걸맞은 규정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은 바뀐 경제 현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원칙적으로는 현상 유지를 고집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도 자유시장에 대한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것이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과 분쟁 사례도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적절한 중재제도는 갖춰져 있지 않다.

중국 정부에 대한 완전한 굴종(혹은 주민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북한 정권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상유지도 정권을 위협하기는 마찬가지다. 2009년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북한 정권은 매우 대담하면서도 적극적인 금융 및 조세 개혁을 시도했다. 화폐가치를 대대적으로 평가절하하고 상당 규모의 예금액을 몰수했다(당시 북한 화폐는 상품 교환이 불가능한 사실상 가치가 없는 돈이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위기에도 꿈쩍하지 않던 북한 정권은 당시 도시 중산층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단 며칠 만에 개혁은 중단되었고, 개혁을 주도한 인사(어쩌면 개혁을 주도한 팀 전체)도 함께 처형됐다.

김정은은 간부, 대도시 거주를 허가받은 주민, 외국인을 상대하는 노동자 등 전체 인구의 20~25%를 차지하는 중간계급이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는 주민들의 욕망을 몸소 실현하느라 여념이 없다. 부친과 똑같은 의상을 입고, 조부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김정은은 언제나 인형 같은 부인을 곁에 대동한 채(현대와 전통의 공존) 새로 문을 연 시설이나 서비스 개장식을 쫓아다니느라 분주하다. 북한 체제가 낳은 순수한 산물이자 권력에 오르기 전에는 거의 무명 인사나 다름없었던 이 젊은 지도자는 현재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어느 월요일 평양의 한 카페에 앉아만 있어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공영방송 한 곳에서 김정은의 일과가 담긴 모습이 전파를 타기라도 하면 금세 가게 안이 조용해지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TV 화면에 고정된다. 45분 방송 시간  내내 TV 화면은 김정은이 분주히 완공식을 찾아다니거나 공사현장을 현지지도하는 모습으로 채워진다.

수도 평양에 가도, 건물, 주택, 놀이공원, 물놀이장, 병원 등이 지평선을 가득 채운 풍경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주말에 놀이공원이나 큼지막한 미끄럼틀이 설치된 물놀이장을 거닌다면 더 많은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가령 주말이면 유원지에 농민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연신 드나들곤 한다. 작업반별로 하루 나들이를 나온 농민들인데, 언제나 대미는 대집단체조공연 아리랑을 관람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렇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미래의 ‘작은 용’이 될 수 있을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다. 단, 북한이 현 정책 노선을 유지하고, 근대국가체계를 재건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지난 세기 외세 침입, 일본 강점기, 사회주의 정권 수립, 6.25전쟁 전후 재건에 이어 북한은 현재 5번째 경제 도약기를 맞이했다. 물론 북한은 이미 많은 경험을 쌓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단순히 경제적 차원만이 아닌, 이념적, 법적 차원에서도 사상초유의 어마어마한 도전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TV, 또 다른 세계


공공장소에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을 뿐더러, 요즘은 도시민의 아파트에도 널리 보급된 북한의 텔레비전은 시청자들을 절대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가령 북한의 TV 방송은 연극무대(이념적 메시지가 담긴 민중연극)나 공연장(군 합창 공연) 등에서 흔히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것만 엄선해 보여준다. 물론 영화극장에서 상영했던 옛날영화도 틀어준다. 하지만 인민의 삶과 관련해서는 오로지 정치적이고 긍정적인 측면만 보여줄 뿐이다. 국영방송은 하루 12시간 방송된다. 일요일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에는 뉴스, 인민가요, 항일전쟁을 소재로 한 중국 드라마, 정치적 노랫말이 담긴 유행가(‘아 내 고향’, ‘아 그리운 영도자’ 등), 과학자를 위한 5천 세대 주택단지와 김일성대학 교수들을 위한 2개 고층빌딩 건설 완공식 현장에 참석한 김정은의 모습, 국경일 기념 군 공연, 스포츠, 동물 다큐멘터리, 과거 영상(열병식, 공연 등)을 재활용한 선전물, 정기적으로 재방송되는 정권 수립일인 9월 9일의 행사 모습, 인민교육에 관한 르포르타주(일종의 평생교육), 재가공된 뉴스 보도, 군 합창 공연 등이 있다. 저녁시간대에는 옛날 영화를 방영한다. 한편 최근 소식에 따르면, 앞으로 북한은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에게 예산과 시나리오에 대한 전권을 쥐어줄 계획이다. 이것은 사실상 매우 본질적인 개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주중 프로그램은 그리 다채롭지 못하다. 대개는 과학 관련 방송이 주류를 이룬다. 오늘날 국가 정책 차원에서 과학을 장려하는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하는 현상이다. 요즘 북한 정권은 오로지 과학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과학자 주택단지 건설이 주는 메시지는 이렇다. 과학자가 되라. 그러면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으리라. 뉴스 시간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여자 앵커나 혹은 가끔은 남자 앵커가 위대한 영도자를 언급하거나 그의 치적을 보도할 때마다 아주 과장된 웅변조로 소식을 전하곤 한다. 부정적인 보도는 아예 꿈도 꿀 수 없다. 한 친구에게 노동당에 가입하면 당회의에 참석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화들짝 놀라며 이렇게 답했다. “그럴 필요가 없다. TV에서 기본노선을 다 알려준다.”


북한은 최근 TV 토론 방송을 시도했다. 비록 토론자들이 암기한 원고를 더듬더듬 읊어대는 소심한 수준에 그쳤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하품 나는 지루한 방송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생방송이라고는 아예 존재도 하지 않는 현실에서 우리는 정말 북한 TV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실은 가요 프로그램조차 하나도 변한 게 없다. 그저 아버지 대신 이제는 아들 김정은을 찬양할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2013년 북한에서는 새로운 방송 채널 ‘만수대 TV’가 개국했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하루 10시간씩 방송되며, 주로 구소련 국가들에서 만든 해외영화나 스포츠가 방영된다. 앵커도, 뉴스도, 기공식 행사 장면도 없는 만수대 TV는 현재 북한 시청자 사이에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진짜 변화는 만수대 TV가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방영하는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외국방송사가 방영한 르포르타주를 내보내며 북한 시청자들에게 국제 뉴스를 선보이고 있다. 가령 지난 10월에는 독일의 선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무기 사랑,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크라이나, 케냐와 이라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이탈리아에서 난파한 호화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프랑크푸르트 국제 모터쇼 등을 다루었다. 요컨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북한 주민들이 국제정세에 그리 무지한 것은 아닌 셈이다.


파트릭 모뤼스 Patrick Maurus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출처 : 르몽드 / 보도일자  : 2015년 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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