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제 무덤 판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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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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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환/동북아연구소 연구위원

 

지금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는 김정일의 사망으로 북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보지만, 기자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불확실성은 극단적인 독선과 아집으로 북한체제를 운영해온 김정일에게 있었다.

 

북한의 파워엘리트 모두가 개혁·개방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오직 김정일은 개혁의 '개'자만 꺼내도 처형했다. 남북관계의 경색 역시 김정일의 판단과 결정에 따른 것이지 북한에서 합리적인 논의와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김정일의 사망에 따른 불확실성 제거는 앞으로 북한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북한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

기자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2008년 중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장기간 생존하는 것이었다. 그의 정신이 멀쩡할 때는 절대로 자기 무덤을 파는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사건을 전개해도 치밀한 계산 속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김정일의 뇌가 망가진 상태에서 생존할 경우 북한은 물론 한반도에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따라서 김정일의 급사(急死)는 한민족에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김정일의 사인(死因)은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병으로 밝혀졌지만 극심한 스트레스가 그 원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는 자신이 판 구덩이에 스스로 빠져들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김정일은 노무현 정권 말기에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부장을 한국에 보내 진보정권의 재집권을 점검할 정도로 한국 대선에 깊숙이 개입했고 거기에 모든 것을 다 걸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김정일은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대남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채 1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 접촉이 이뤄졌지만 이명박 정권의 완강한 태도에 김정일은 극도로 화가 났다. 그 후 김정일은 "이명박과는 끝장을 보겠다"고 했고, 그때부터 대남 강경 정책은 일관성 있게 추진됐다.

 

금강산에서 벌어진 박왕자씨 피살사건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은 이런 김정일의 결심이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남한에서 벌어진 촛불시위 등 온갖 반(反)정부·반미 시위에 끼어들어 이명박 정권 흔들기에 총력을 다해왔다. 이명박 정부도 원칙론을 내세워 일관된 대북정책으로 응수했고 남북 간의 기(氣)싸움에서 최후 승자는 이 대통령이 됐다.

이명박 정권은 북한정권을 허물기 위해 적극적인 전략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정부들처럼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탕진되는 대북지원은 중단했다. 남한으로부터 오던 막대한 현금과 식량이 끊긴 북한의 엘리트들은 당황했지만, 김정일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런 어려운 마당에 2009년 11월 단행한 화폐개혁은 상층부에서 하층부에 이르기까지 전 인민을 분노하게 하였다. 배급이 다 끊긴 상태에서 인민들의 생존수단인 시장이 붕괴하면서 국가경제는 파국으로 내몰렸고 아들에게 넘겨준 국가는 빈 껍데기뿐인 나라가 됐다. 이제 김정은은 '김씨 왕조'를 걸고 과감한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죗값까지 모두 받아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NKchosun


201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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