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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日成주의 종교집단의 現在와 未來

탈퇴한 회원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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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cdnk.org

2007-08-16 16:46:11  |  조회 1654



金日成주의 종교집단의 現在와 未來 [논문] 북한해방이냐, 민족공멸이냐? 金成昱 1. 金正日 정권은 사이비 종교집단? 북한은 주체사상을 종교화한 신정(神政)국가인가? 미국의 종교관련 통계사이트인 「어드히런츠닷컴」(adherents.com)은 5월7일 북한의 주체사상이 세계10대종교에 해당한다는 통계자료를 발표했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종교로 분류하고, 신도수가 1천9백만인 세계10위 규모의 종교라는 요지였다. 이 사이트는 「주체(主體)」를 종교로 분류한 이유에 대해 『주체사상은 북한이 다른 종교들을 배척하는 관점에서 단일 정부 주도의 사상』이라며 『1950년대 시작된 주체사상은 북한 정부에 의해 교육내용으로 보급되었지만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명백하게 하나의 종교』라고 주장했다. <金日成 동상 앞에서 참배, 묵념, 기도까지> 북한정권의 통치행태가 강한 종교적 색채, 특히 유사(類似)기독교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金日成·金正日 가계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데 기인한다고 알려졌다. 실제 金日成의 어머니는 강반석, 즉 베드로(반석)라는 이름이었고, 金日成의 아버지 역시 기독교 신자였다. 金日成은 어릴 때부터 주일 학교에 다니다가, 훗날 공산주의자가 됐다. 북한 내 기독교 교리나 의식을 변형한 사례는 적지 않다. 우선 북한의 헌법보다 상위규범은 조선로동당규약이며, 그보다 상위규범은 「유일사상확립을 위한 10대원칙(10대원칙)1)」이다. 金日成을 절대화하는 10대원칙은 유일신 사상의 기독교 10계명과 체계가 같다. 기독교인들이 10계명을 암송하듯, 북한주민들은 10대원칙을 달달 외워야 한다. 종교적 성소(聖所)에 해당하는 「金日成혁명사상연구실」은 북한 전역에 45만 개가 위치해 있다. 2005년 말 한국의 교회 수는 5만1775개로서, 북한의 金日成연구실 수는 남한의 교회수를 압도하고 있다. 기독교적으로 우상(偶像)에 해당하는 金日成 동상은 약 3만5천 개에 달한다. 『위대한 수령 金日成 동지는 영생할 것이다』라는 표어 아래 동상 앞에서는 참배와 묵념이 이뤄진다. 북한주민들은 이곳에서 가정의 대소사(大小事)를 치르기도 하고, 심지어 기도까지 드린다고 전해진다. 일종의 「사당(祠堂; 신주(神主)를 모신 집)」에서 「신당(神堂; 신령(神靈)을 모신 당집)」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주체사상을 기독교적 차원에서 연구해 온 임헌만 북한가정사역연구소장은 『북한은 국가(國家)라기 보다는 수령이 교주가 된 사교(邪敎)집단, 유사(類似)기독교사회라고 볼 수 있다』며 『주체사상은 북한을 거대한 사교(邪敎)집단으로 만들어 주민들을 억압해 온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 金日成에 호감을 보여 왔던 독일의 루이제 린저마저 85년 방북 후 북한을 『예수가 없는 기독교 사회』라고 평가했다. 일종의 「사이비 기독교 집단」이라는 지적이다. <조선중앙통신, 666은 金正日 생일서 유래> 북한은 「사이비 기독교 집단」을 자인하듯, 기독교적 사탄의 상징까지 내세우고 있다. 1999년 7월6일 조선중앙통신은 성경에 등장하는 사탄의 상징인 666이 金正日로부터 연원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요즘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 속에서 <666>이라는 수자가 유행되고 있다. 이 숫자는 지난해 위대한 金正日 영도자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으로 추대되신 선거구번호가 <666>이라는 데로부터 유래되었다...만백성의 한결같은 의시에 의해 金正日 영도자께서 최고인민회의대의원으로 높이 추대되신 선거구의 번호가 <666>인데 <6>자 셋을 모두 곱하면 <216>이 되는 바 이것은 그이께서 탄생하신 2월16일을 의미하며 이날은 민족최대의 명절이다』 金正日의 생일이 2월16일로서, 6을 세 번 곱한 것이며, 金正日이 선출된 선거구번호 역시 666이라며, 기독교적 사탄의 수인 666을 북한의 신령한 숫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해마다 종교 否定 논문 쓰는 봉수교회 목사들> 사이버 기독교 집단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북한의 기독교 관련 기관들은 허구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2).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북한의 《평양 봉수교회》 역시 조선로동당 산하 가짜교회이다. 예장통합의 南선교회는 봉수교회에 50억 원의 헌금을 지원하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봉수교회에 관한 북한내부 사정에 정통한 탈북자 및 전문가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다. ①봉수교회 목사와 신도들은 모두 金日成 종합대학 종교학과 등을 나온 조선로동당의 당원(黨員)으로서 對南사업일꾼들(요원들)이다. 이들은「金日成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자들이다. 목사와 사찰의 가짜 승려들은 「종교의 허황됨」을 주제로 매년 논문 한 편을 써야한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기독교든 불교든「金日成 수령독재」를 합리화하는 수단인 것이다. 참고로 조선로동당 규약은 『당의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며 당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당원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위하여 헌신하는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투사이다...당원은 당과 수령에 무한히 충성하고 우리 당의 유일사상체계로 확고히 무장하며 당의 요구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봉수교회 목사와 신도들은 이처럼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 건설을 목표하는 공산주의 혁명투사들이다. 조선로동당 고위간부를 지낸 한 탈북자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교회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운영하고 목사는 요원이며 신도들도 다 훈련된 가짜라는 건 북한사람들도 압니다. 대외적으로 북한이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선전하기 위해, 그리고 남한 기독교 신도들의 돈을 사취하기 위해 만든 가짜인데 교인들이 돈을 모아 주다니, 세상에...그 돈은 金正日 정권이 남한 赤化를 잘 하라고 바치는 셈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까』 ②봉수교회는 정기적인 주일예배가 없다. 남한 등지에서 기독교인들이 오는 경우에만「연극」처럼 예배를 드린다. 일반주민은 봉수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없고, 목사·교인들의 전도나 선교도 존재하지 않는다. ③봉수교회 목사와 신도들이 행하는 소위「예배」는 사전과 사후에 金日成주의와 다른 사상을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은 데 대한 일종의「淨化의식」이 치러진다. 金日成주의에 벗어나는 기독교신앙 침투를 막기 위한 사전학습, 사후비판 같은 것이다. ④『북한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생활총화」라는 이름의 일종의 자기비판을 한다. 봉수교회 관계자들은 예배 전후 더욱 철저한 자기비판을 행한다. 특히 예배에서 남한사람들과 접촉한 후에는 「하나님은 없다」는 총화사업을 벌인다.(前조선·체코 신발기술합작회사 사장 김태산氏 증언)』 ⑤『한국인, 외국인을 접촉하는 對南사업일꾼들은 생활총화가 잦은데, 봉수교회 참석자들은 더 혹독한 의식(儀式)이 치러진다. 이것은 수령절대주의와 다른 사상을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들은 데 대한 일종의 「淨化의식」같은 것이다(자유북한방송국 김성민氏 증언)』 ⑥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북한인권백서2007(白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북한은 조선그리스도연맹(조그련), 조선불교도연맹, 조선카톨릭협회 등의 종교단체를 두고 있지만, 「외화벌이」수단으로 종교를 활용하고 있다. 새터민(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은 여전히 종교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白書는 특히 평양 봉수교회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북한당국은 교회, 성당, 사찰을 정치적 목적에 따른 對外선전용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평양 봉수교회는 평시엔 관리원 가족만 거주하고 있으나, 외국인 참관 시에는 만경대구역 내동사무소 근무자 등 당에서 엄선한 40대~50대의 남녀 수백 명이 위장(僞裝)예배를 보고 있다고 한다...북한을 방문한 외국 기독교인들이 부활절 일요일에 사전 협의 없이 봉수교회를 방문했다가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많은 외국 방문객들은 교회활동이 연출된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숭배와 首領숭배, 질적으로 같은 종류』> 「유사(類似)기독교」로서의 주체사상은 나름의 종교적 이론체계를 갖추고 있다. 金日成대학 교수였던 신은희 미국 심슨대 교수는 인터넷 통일뉴스(대표 이계환, 상임고문 강만길·자문위원 김원웅 外)를 통해 「주체사상을 통해 기독교적 구원이 가능하다」는 요지의 소위 『주체영성(主體靈性)론』을 게재했다. 『주체사상은 기독교를 「조선식으로」 믿는 다원주의적 토착신학』이라는 것으로서, 『조선 사람은 조선하늘에서 조선의 하나님을 믿자』는 金日成 교시를 원용, 결과적으로 金日成에 대한 숭배가 기독교 하나님 숭배와 다를 바 없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北,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복원』> 신은희는 「예수도 주체사상가였다」라는 글에서 『주체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자주적 구원을 이루는 원리를 뜻한다. 예수에게서 나타난 기독교 정신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보다 주체정신에 훨씬 가깝다』며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의 주체를 지키고 자주적으로 민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北의 몸부림은 기독교 정신에 가장 근접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복원인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수령 아버지」라는 글에서는 『기독교가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고유한 종교문화라면 주체사상은 수령아버지를 믿는 北의 고유한 문화이다...그러나 주체사상의 유일사상 체계는 기독교의 절대적 배타성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라며 『기독교의 하나님 숭배나 北의 수령 숭배나 문화적 표현만 다를 뿐이지 그 신앙의 깊이와 영성은 질적으로 같은 종류』라고 설명한다. 즉 金日成을 하나님과 동렬에 위치해 놓는 것이다. <『예수투쟁과 선군정치』봉수교회 설교서 많은 은혜(?)> 「北의 봉수교회는 가짜 교회인가?」라는 글에서는 『미국교회를 따라하면 정상교회, 진짜교회가 되고 「우리 식으로」 믿으면 이단교회, 가짜교회가 되는 것은 전형적인 종교제국의 지배논리일 뿐이다...이 세상에는 진짜교회도 없고 가짜교회도 없다. 서로 다른 교회만이 있을 뿐』이라며 『北이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름대로 정의한 기독교가 있다. 그것은 北의 기독교이며 北의 상황에서 탄생한 조선식 복음』이라는 논리를 편다. 이어 『北의 주체문화에서 보면 北의 기독교는 민족종교로 가는 과정에 있다』며 『사실 나는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눈물로 얼룩진 예배였다. 기독교인들의 용어로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다」. 초봄이라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몹시 추웠지만, 마음은 훈훈했다. 설교의 내용은 「예수의 투쟁과 선군정치」였다』는 체험(?)도 적고 있다. <脫美 위한 주체영성?> 신은희는 『주체영성은 北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통일을 여는 21세기에는 北보다 南에 더 필요하다. 총체적 탈미(脫美)를 시도해야 하는 엄청난 과제가 있는 한국사회에 주체영성이야말로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주체영성으로 열어가는 자주적 통일문화」)』라며 미국문명에서 벗어나 소위 주체영성, 즉 金日成주의를 실천할 것을 선동한다. 또 『주체신학이란 자신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그대로 지키고자 하는 주체적 본능과 열망을 조선식으로 표현한 신학적 인간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아 없이 신의 이해가 불가능하듯 주체성 없이는 어떠한 신학도 北에서 불가능하다. 이러한 北의 상황신학인 주체신학을 이해하는 것은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21세기 통일신학의 출발점(「주체신학 가능한가」)』이라며 주체사상을 미화하고 있다. 2. 북한정권의 기독교탄압 <10만에 달하는 기독교인이 수감> 「사이비(似而非)」는 「정통(正統)」에 적대적이기 마련이다. 북한은 인류역사상 기독교에 가장 적대적인 체제이다. 공산국가 선교단체인 「오픈 도어즈」(Open Doors)」 등 국제통계에 따르면, 북한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2~3만 가량이 정치범 수용소에, 5~7만 명가량이 노동교화소에 수감돼 있다고 한다. 많게는 10만에 달하는 이들 종교인 대부분은 기독교인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3). 20여 년간 북한선교를 해 온 이삭 목사는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20여 만의 죄수들 중 기독교와 연관된 이들이 11%가량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보다 훨씬 많은 비율이 성도이며 그 비율은 늘고 있다』고 증언한다. 대한변협이 지난 해 펴낸 북한인권白書는 90년대 초 황해남도 안악군 86명의 지하기독교인들이 국가안전보위부에 발각되어 처형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고, 98년부터 대내적으로 종교탄압을 다시 강화해왔고, 2001년 11월에만 적어도 3차례에 걸쳐 기독교도들에 대한 처형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白書에 수록된 종교 관련 탈북자들의 증언 중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북한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2006년 중국에서 성경책을 들여와 기도하다 김OO, 조OO, 김OO 등이 처벌받았다》 《2004년 강제 송환된 탈북자이 종교 활동을 해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 《2002년 여름 중국에서 성경책을 들여와 신앙생활을 하다 6명이 체포됐다》 《2000년 종성구 두만강건설사업소 노동자 소속 30대 남성 OOO가 분소 검열에서 성경책이 발각돼 공개 총살됐다》 《2000년 겨울 OO병원의사·간호사가 11명정도 주민을 모아 성경공부를 하다 끌려갔다》 《2000년 남포시에서 여섯 명이 성경책으로 예배드리다 15호 수용소로 끌려갔다》 《99년 무산 지하교회 사람들이 잡혀서 수용소에 가거나 총살당했다》 《99년 탈북 후 조사과정에서 중국에서 교회를 다닌 것이 밝혀져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었다》 <『3년간 미행 끝에 지하교회를 발각했다』> 2007년 발간된 통일연구원 「북한인권白書2007」은 기독교인 탄압에 대한 다양한 증언들을 싣고 있다. 白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북한은 기독교가 북한의 체제유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기독교의 포교를 강력히 억제하고 있다...개인차원에서 신앙생활은 철저하게 탄압한다는 것이 새터민(탈북자)들의 일치된 증언이다...1997년 이후 주민들은 1년에 2회 이상 해당 보위부 지도원들로부터 기독교 전파 방지를 위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교육내용은 주로 기독교 전파자 색출의 필요성과 기독교인 식별 요령 등이다』 白書는 또 △기독교를 『국가제도 전복(顚覆) 실현 수단』으로 보고 기독교인 색출을 지시한 2005년 7월 북한당국 문건, △「1996년 3년간의 미행 끝에 지하교회를 적발했다는 탈북자 증언」 , △「2001년 평남 강서군 기독교인들 처형 사례 증언」, △「2004년 평북 모처에 비밀 교회가 있다는 탈북자 증언」 등의 사례를 수록하고 있다. 이 중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2003년 4월 중국인이 가방에 성경책 갖고 입국하다 온성 구류장 수감(2007년 3월10일 서울에서 면접)》 《2001년 평남 강서군 55세 여성 기독교신자로 사람을 규합하다 체포돼 본인은 처형, 가담자는 교화소 수감(2007년 3월10일 면접)》 《2000년 10월 북한주민 리복순, 중국 길림성 로가향의 교회에 다닌 게 발각돼 무산 보위부 수감(2007년 2월2일 면접)》 《2001년 남포에서 종교전파로 적발돼 5명이 총살됐다는 것을 전해 들음(2003년 4월26일 면접)》 《북한주민 요한, 중국에서 기독교에 접했다는 죄목으로 3년의 노동교화형(2002년 9월7일 면접)》 《자신의 언니가 연길의 교회에서 한국인과 만난 것이 적발되어 체포 송환(2002년 8월3일 면접)》 《『기독교와 관련이 있다』는 다른 탈북자의 밀고로 보위부에 체포(2002년 8월3일 면접)》 《은덕군 주민 60여명이 교회에서 회합한 사실이 발각돼 15년 형(2002년 6월29일 면접)》 《1990년 초 황해남도 안악군 86명의 지하교인 발각돼 처형 또는 정치범수용소 수감(연합뉴스 2001년 6월15일)》 《평북 운산군 4명의 일가족 예배드리다 처형 또는 정치범수용소 수감(2000년 5월24일 면접)》 《탈북자 OOO는 1996년 3년간의 미행 끝에 지하교회를 적발한 적이 있다고 증언(2000년 5월22일 면접)》 《2004년 평북 지역 비밀 교회가 소재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음》 <北 강연제강, 『기독교는 체제전복 수단』> 북한의 기독교 등 종교에 대한 인식은 북한당국이 2005년 7월 펴 낸 「우리 내부에 종교를 퍼치려는 적들의 음흉한 모략책동을 단호히 짓부시자」는 소위 <강연제강>에 자세히 나온다. 이 강연제강은 對北지원단체인 「좋은벗들」이 지난 해 4월 펴 낸 소식지에 실려 있다. 북한당국은 강연제강에서 기독교 등 종교는 『국가제도 전복(顚覆) 실현 수단』이자 『민족의 자주권 침해』 심지어 『인권유린(人權蹂躪)』이라고 주장했다. 강연제강은 한국정부에 대해 『비법월경자들과 시사려행자, 무역거래자들을 돈과 물건으로 매수하여 그들을 통해 우리 내부에 성경책을 비롯한 종교출판선전물들과 종교, 록음, 록화물들을 들여보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또 『보고 들은 것이 일생동안 잘 잊혀지지 않는 아동생리적 특성과 심리를 리용하여 철없는 아이들에게 <속성종교교육>을 주고 다시 국경을 넘겨 보내어 아이들과 부모들 속에서 종교를 퍼치며 장차 <지하종교조직>의 활동에서 한 몫 단단히 써먹으려한다』며 『적(敵)들의 反공화국모략책동이 날이 갈수록 우심해지고 있으며 이젠 도수를 넘고 있다』고 비방했다. 이어 『(종교침투 행위를 막는 것은) 단순한 실무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혁명의 수뇌부이신 경애하는 金日成 장군님을 정치사상적으로 옹호 보위하는 심각한 사상적대결전』이라고 주장했다. 이 강연제강이 사회주의 체제전복 사례로 들고 있는 것들은 아래와 같다. 《사례 1. 2004년 5월, 무산군에서 부양으로 사는 한 여성은 주변나라에 사사려행(개인 여행)을 갔다가 교직자로 가장한 남조선 괴뢰<정보원>놈에게 매수되여 우리 내부에 종교를 퍼치라는 권고를 받고 성경책과 기도를 하는 방법을 적은 수첩을 물품 속에 감춰가지고 나오다가 세관에서 적발됐다. 사례 2. 2004년 5월, 어느 국경연선군에서는 비법월경했다가 남조선괴뢰 <정보원>놈들에게 매수되어 3년여간의 전문종교교육을 받고 우리 내부에 종교를 퍼치면서 <지하종교조직>을 꾸릴 간첩임무를 받은 <비법월경자>년을 체포했다. 사례 3. 2004년, 주변나라의 어느 한 도시에서 남조선 선교사 박모(<정보원>요원)놈이 자기 집에 여러 명의 비법월경자들을 끌어들여 종교교육을 준 다음 전문간첩훈련과 <지하종교조직>을 꾸릴 구체적인 임무를 주기 위해 그들을 남조선으로 빼내가려다가 해당 나라 안전기관에 체포됐다.》 <기독교인이 집중 처벌되고 있다> 기독교인은 최근 북한정권에 의해 집중 처벌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민주화위원회(이하 북민委)는 5월21일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포럼」에서 『최근 북한정권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이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민委의 발표 내용은 최근 인권유린을 당한 경험이 있는 50여 명의 탈북자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됐다. 북한委의 강철환 운영위원장은 발제를 통해 『국가안전보위부는 2002년 「기독교를 간첩죄로 다스리라」는 내부지침을 하달했다』며 『최근 한국교회의 선교로 탈북자들과 국경지역 기독교 신자들이 급증함에 따라 기독교인에 대한 집중 검열과 처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姜위원장은 『기독교인으로 판명되면 이유를 불문하고 「종신수용소(終身收容所)」에 압송되거나 심한 경우 「비밀처형(秘密處刑)」이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안전보위부에 수감됐던 탈북자 2명은 「기독교인인 2~3명의 정치범이 감옥 내에서 「완전히 죽어야 하는 대상」으로 분리돼 온갖 고문을 받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제북송경험이 있는 탈북자들 대부분은 「국가안전보위부의 예심을 받을 때 기독교인을 접촉한 사실이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추궁 당했다」고 일치된 증언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혔다. <『평양은 회복될 것입니다』1500여 개의 지하교회 증언들> 북한에서 처벌받는 기독교인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지하교인의 존재를 반증해준다. 20여 년 북한선교를 해 온 이삭 목사는 新刊 「붉은 예수쟁이」에서 지난 해 12월 전해들은 내부 소식 한 가지를 전했다. 『지금 북한 땅에선 수많은 지하교회 기독교인들이 순교(殉敎)당하고 있다. 얼마 전 나무에 손을 묶어 매달고 장작으로 발밑에 불을 질러 태워 죽였다는 순교 이야기를 들었다. 4백~5백 명이나 되는 목사, 집사, 장로들을 폐광에 몰아넣고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몰살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예수를 부인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말이다.』 그는 또 이렇게 적었다. 『순교자는 찬송을 부르며 그렇게 죽어가야 했지만, 그 순교자의 가족들은 남편 때문에 아빠 때문에 갖은 박해와 고난을 받으며 살아왔다. 순교자의 자녀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은 망명을 원치 않으며 돌아가서 믿음을 더 굳게 하고 순교하는 정신으로 살겠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헤어지면서 이 순교자의 자녀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에서 만나 갔디요?」』 이런 증언들은 순교를 감내하는 확신에 찬 종교인들이 북한 땅에 번져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금 북한에는 1500여 개의 지하교회, 많게는 40여 만 명에 달하는 지하교인이 존재한다고 추산된다. 金正日 정권과 목숨을 버려가며 대립할 수밖에 없는 주민이 40만 명 이상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의 지하교인은 날마다 순교를 각오하고 살아간다. 그들은 아무 곳에서나 기도드릴 수 없기에 남의 눈을 피해 몰래 숨어 기도한다. 학습장에서 기도를 할 때는 눈을 감고 기도할 수 없어 그냥 하늘을 보고 기도한다. 『성경 한 권 얻기 위해 20년을 기도했습니다. 성경 한 권 얻기 위해 40년을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북한 지하교인들의 간절한 신앙고백이다. 『천국에서 만납시다.』 이것은 북한의 지하교인들이 성경을 전하는 외지인을 만났다가 돌아서며 남기는 말이라고 한다. 북한선교를 해 온 사역자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추방당하고, 죽음의 골짜기로 내몰린 북한의 성도와 교회들이 무수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갇히고, 매 맞고 죽어가는 순교(殉敎)행전이 북한 땅에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핍박 속에서도 천국을 소망하며, 오늘의 고통을 견디고 종말론적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론적 신앙. 그렇게 죽기를 각오한 기독교인이 40만. 과학적(科學的)으로도 이런 북한체제는 붕괴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북한선교를 해 온 한 목회자의 수기이다. 『하나님은 북조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북한 땅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택한 백성, 뽑아낸 백성을 포기한 일이 없으십니다. 북한을 복음으로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열정은 아무도 따를 수 없습니다. 용광로와 사자굴에 넣어서라도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드시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평양은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평양을 함락해야 합니다. 평양을 침노해야 합니다.』 얼마 전 읽은 북한 지하교인 수기 중 한 부분이다. 『나 비록 죽고, 아침의 이슬처럼 사라지나 저는 압니다. 이 땅의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광명을 찾아주실 주님의 때를 십자가로 승리하신 당신께서 오늘도 승리하실 것을 압니다....』 남한(南韓)의 기독교인들이 해마다 수백만 달러를 金正日에게 갖다 바쳐도 金正日은 죽어가고 있다. 북한정권도 해체되고 있다. 『평양이 회복될 것』『어둠이 물러갈 것』이라 믿는 지하교인들, 자유·풍요·번영을 꿈꾸는 북한주민들의 마음이 金正日과 북한정권을 무너뜨리고 있다. 3. 북한정권의 인권탄압 북한정권의 사탄적인 특징은 사랑의 不在에 기인한다. 이것은 북한에서 저질러지는 끔찍한 인권유린으로 드러난다. <굶어죽은 것이 아니라 굶겨 죽인 것이다> 북한인권의 첫 번째 참상은 「굶주림」이다.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중에는 300만이 아사했다. 이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굶주림의 원인은 무엇인가? 식량증산의 실패 탓인가? 미국의 對北제재 때문인가? 북한 사람들은 (1)식량 대신 무기를 사들이는 「先軍정치」과 (2) 핵심·동요·적대계층의 3계층 51개 부류에 기초한 「계급차별」(3) 金日成·金正日 「우상화 정책」으로 인해 굶주려왔다. ① 우선 金正日 정권은 돈이 있어도 식량 대신 무기를 사들이고, 만들어왔다. 뒷 부분에서 자세한 설명을 하겠지만 북한은 핵실험만 하지 않았다면, 2007년 모자라는 식량을 사고도 1489억 원이 남는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비축한 군량미만 풀어도 역시 올 해 모자라는 식량을 상당부분 충당할 수 있다. 로동신문 1999년 4월22일자에 따르면, 金正日은 식량구입 대신 무기개발을 선택했음을 이렇게 자인했다. 《적들은 인공위성(대포동 미상일의 북한식 호칭)의 발사만으로도 수 억불은 넉넉히 들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 돈을 인민의 생활에 투자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인민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유족하게 살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운명을 지키고 내일의 부강한 조국을 위하여, 자금을 그 부문에 돌리는 것을 허가하였다.》 평양 외국문출판사에서 출간된「金正日의 先軍정치」라는 소책자 역시 『장군님은 어느 날 나라가 목전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군수산업에 힘을 쏟지 못하게 되면 사회주의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고 강조했다』며 『케이크나 알사탕 등은 만들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병기나 탄약을 제조하지 못하게 되면 살아갈 수가 없다고 말하였다』고 적고 있다. 하나같이 金正日 정권이 자국민을 먹여 살릴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실례들이다. ② 金正日 정권이 무기개발과 함께 돈을 쓰는 주요 분야는 金日成·金正日 부자의 신격화다. 크리스챤사이언스모니터가 2007년 1월3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金부자 신격화를 위해 국가 예산의 40% 가량을 쓰고 있다. 1990년대에는 전체의 19%에 불과했으나, 2004년에 그 두 배인 38.5%로 증가했고, 근래 들어 40%로 늘었다는 분석이다. 金正日 정권은 2007년 예측되는 식량난 속에서도 金부자 우상화물을 계속 건립하고 있다. 조선중앙방송은 2006년 12월31일 金日成 부자의 혁명사적비가 평북 용성 등 전국 곳곳에 건립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혁명사적비 이외에도 색유리, 타일, 천연석 등으로 金부자나 김정숙(金正日 생모)의 모습을 새겨 넣어 만드는 모자이크 벽화도 만들고 있다고 한다. 94년에는 金日成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치장하는데 무려 9억불을 쓰기도 했다. 9억불이면 1년6개월 어치의 태국산 쌀을 살 수 있고, 3년 어치의 옥수수를 살 수 있는 돈이기도 하다. ③ 무엇보다 북한의 아사자는 「3계층(핵심·동요·적대계층) 51개 부류」라는 불평등한 신분차별정책에 비롯한다. 외부에서 식량을 지원해도 軍에 우선 배급되고, 핵심계층을 제외한 절대다수 주민인 적대계층과 동요계층에게는 배급하지 않는 것이다. ④ 결론적으로 북한의 식량난은 「피할 수 없는」 재난(災難)이 아닌 「피할 수 있는」 정권의 정책(政策)실패에 기인한다. 주민들은 굶주린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은 金正日 정권에 의해 굶겨 죽여진다. <탈북자의 60~70%가 여성, 그 중 8할이 인신매매> 굶주린 백성들은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탈북자은 不法체류자이다. 이들은 인신매매, 폭력, 임금未지불 그리고 강제송환 등에 시달려야 한다. 북한인권 단체들은 탈북자의 60~70%가 여성이고 그 중 70~80%가 인신매매를 당했으며, 이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폭력에 시달려왔다고 지적한다. 인신매매된 여성은 나이, 미모, 결혼 유무 등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2006년 12월7일, 美國의 북한인권위원회는 탈북자 1천346명을 인터뷰한 「新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여기는 탈북여성의 「인신매매 거래가(去來價)」가 기록돼 있다4). 보고서는 탈북여성이 평균적으로 중국 돈 1천900위안에 팔려가고, 1천700위안이하의 가격에 팔리는 이들도 절반에 달한다고 밝혔다. 1천900위안이면 244달러, 1천700위안이면 218달러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3~20만 원대에 불과하다. 탈북여성 김춘애氏은 『지린(吉林)성을 포함한 중국 땅 곳곳에서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인민폐 500위안(한화 8만원)에 팔려온 북한 여성들까지 목격했다』고 증언한다. 북한인권 단체들은 중국 내 탈북자 수를 많게는 30만 정도로 추산한다. 이 수치대로라면 단 돈 20만 원에 돼지처럼 팔려 다니는 동족(同族)의 수가 지금도 20만이 넘는다는 게 된다. 돼지 한 마리 값에 팔려 다니다 보니, 실제 중국 내 인신매매범들은 탈북여성을 가리켜 「돼지」로 표현한다. 돼지 한 마리, 두 마리 하는 식이다. 인신매매는 범죄 집단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다. 범죄조직에 팔려 다니는 탈북여성에게 인권(人權)이 있을 리 없다. 王씨에게 팔렸다 낙태당한 뒤, 李씨에게 다시 팔리는 격이다. 性폭행·강제결혼·원치 않는 임신·부인과 질병에 노출돼 있다. 강제로 결혼을 해도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무시와 구타, 경제적 어려움, 북한거주 가족에 대한 그리움, 不法체류신고 협박 및 체포, 송환의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족쇄에 묶여 끌려가는 탈북자> 중국 내 탈북자이 북한 당국에 강제 송환되는 순간부터 참상은 격렬해진다. 수갑·포승·새끼줄·신발 끈·철사 심지어 족쇄에 끌려가 송환되는 탈북자은 한 해 수천 명에 달한다. 미국의 민간단체 「난민·이민위원회(USCRI)」는 「2006년도 국제난민조사」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은 매주 100여 명의 탈북자를 북한으로 강제송환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5천여 명이 강제 송환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북한은 98년 4월 탈북자 강제송환을 위해 보위부 산하 소위 「추격과」를 신설했다. 북한의 보위부 공작원들은 탈북자을 가장하기도 한다. 중국 동북지방의 민가를 습격하거나 강도, 절도 사건과 같은 강력사건을 조작, 중국 공안당국이 탈북자 색출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북한은 2004년 4월부터 朝·中국경지역에 소위 「4중 감시체제」를 작동시켰다. 2005년 말부터는 탈북자들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발에 밟히고」「눈에 찔리도록」 고안한 대못을 박은 『인간 덫』을 설치했다. 북한당국에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은 우선 「국가안전보위부 산하 변방구류장」 등에서 온갖 비인간적 처우를 받게 된다. 辯協이 발간한 북한인권백서2006에서 인터뷰한 탈북자 100인 중 송환 경험을 가진 절반가량의 탈북자들은 쇠사슬·부삽·불갈고리·각목·벨트 등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한다. 손을 뒤로 묶고 수갑을 쇠창살에 채워 안지도 서지도 못하게 방치하여 온 몸의 근육을 굳게 하는 「비둘기고문」, 손발을 뒤로 묶은 뒤 바닥에 닿을 정도로 매달아 놓고 구타를 하면서 고문을 가하는 「비행기고문」, 겨울에 옷 벗기고 바깥에서 기마자세로 밤새 세워두는 「동태고문」등은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이 공통적으로 당했던 고문행태들이다. <한국망명 탈북자들, 중국서 不法납치> 북한정권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중국 내에서 不法납치하는 일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 2002년 8월 서해안에서 꽃게잡이 배를 몰고 탈북했던 김철순(33)씨와 같은 탈북자 신성심(24) 부부는 지난 4월7일 중국에 신혼여행을 갔다 납북됐다. 이들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유인책에 걸려 납치돼 현재 북한에 수감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9년 탈북 한 진경숙씨는 남편 문 모씨와 2004년 8월 중국 길림성 화룡(和龍)시의 북한 접경지역 두만강변에 갔다 납북됐고, 남편 문 모씨만 탈출했다. 「진씨가 보위부 감방에서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생사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04년 2월 함경남도 요덕수용소 동영상을 입수해 화제를 모았던 강건(본명 강승일.36, 2000년 탈북)씨는 2005년 3월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에서 납북됐다. 「강씨가 국가안전보위부 평양감옥에 수감됐다」는 사실이 탈북자들에 의해 확인됐으며, 역시 그의 생사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혜산시 출신 김철수(42. 2002년 입국)씨와 지만길(36. 1999년 입국)씨는 2003년 4월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을 탈북 시키기 위해 혜산시와 마주한 중국의 장백현에 갔다 납북됐다. 이들은 북한 보위부의 요청을 받은 중국공안에 의해 비밀리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펌프질」「뽐프훈련」「자궁검사」「전기형(電氣刑)」> 여성들에 대한 유린은 극심하다. 송환경험을 가진 여성 탈북자 대부분은 항문이나 음부에 숨긴 돈을 색출하기 위해 보위원들 앞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수색(?)」을 당한다. 이것을 「펌프질」 또는 「뽐프훈련」이라고 부른다. 물론 이 역겨운 고문은 옷을 벗긴 상태에서 진행된다. 여성 탈북자들은 소위 비밀편지, 비밀문건을 찾기 위한 몸수색 과정에서 「자궁검사」를 당하기도 한다. 심문이라는 구실 아래 여성의 옷을 다 벗기고 몸의 특정부위에 「전기형(電氣刑)」을 가하는 등 성폭행을 당한 증언도 있다. 변방구류장에서 옷을 모두 벗기고 속옷 차림으로 수감생활을 했다는 여성들은 그나마 무난한 수준이다. 강제 송환 여성들에 대한 또 다른 인권유린은 「영아살해」와 「강제낙태」이다. 『아이를 비닐에 싸서 살해한 뒤 화장실에 버리게 하였다』『온성 OOO에서 탈북여성 수감자의 출산한 아이를 비닐에 싸서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청진 OOO에서 「중국 놈의 아이를 뱄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자마자 비닐에 싸서 질식사시키는 것을 목격했다』『구둣발로 임신부의 배를 걷어차서 강제 유산시키는 것을 보았다』는 등 직·간접의 증언들이 辯協의 북한인권백서(白書) 등에 기록돼 있다. 한 탈북여성의 증언이다. 『무산 OOO에서 함흥 출신의 8개월 된 임산부는 중국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강제낙태가 강요됐다. 운동장을 계속되는 형벌이 가해졌다. 이 임산부가 조산을 하자 아기를 비닐로 싸서 감방 안에 방치했다. 그러나 아기가 죽지 앉자 다른 수감자를 시켜 양동이의 물에 넣어 아기를 살해했다.』 <박스에 버려져 죽어나가는 영아들> 美國의 인권운동가 데이빗 호크의 「감춰진 수용소(Hidden Gulag)」는 영아살해에 관한 증언들을 더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를 일부 인용해보자. 《南신의주 道집결소(2000년 5월). 증언자 최영화(25) ; 구금자 중 10명의 임산부가 있었고, 이 중 3명은 임신된 지 8개월 이상 된 여성들이었다. 崔씨는 산모를 돕는 일을 맡았다. 산모들은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아기를 출산했다. 그러나 잠시 후 담당자들은 산모와 崔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를 젖은 수건으로 질식시켜 죽였다. 산모는 실신하고 崔씨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됐다. 다른 아기들도 산모 앞에서 죽음을 당했다.》 《南신의주 道집결소. 증언여성 A(66) ; A는 7명의 아이를 받아냈지만 7명 모두 죽음을 당했다. 첫 번째 아기는 중국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28세의 任이라는 여성의 아이였다. 그 아기는 산모가 중국에서 임신을 해 양양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건강하고 몸집이 컸다. A는 출산 당시 아이의 머리를 잡아 빼주었고, 탯줄을 끊어 주었다. A가 아기를 받아내고 모포로 감싸주었을 때, 경비대원은 아기의 한쪽 다리를 잡아채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에 집어 던졌다. 박스에 죽은 아기 시체들이 가득 차면 밖으로 옮겨져 묻히게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金이라는 여성의 출산을 도왔다. 산모는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A가 아기를 쓰다듬어 줄 때, 아기는 그녀의 손가락을 빨기도 했다. 경비대원이 와서 A에게 소리 지르며 아기를 박스 안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A가 머뭇거리자 경비대다원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고 이로 인해 A의 이가 부러졌다.》 《이틀 후 강제 분만된 2명의 아기는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아기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비록 얼굴은 노래지고 입술을 파래졌지만 아기들은 여전히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경비대원들이 와서 아직 두 명의 아기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 머리의 부드러운 부분을 집게로 눌러 아기들이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보고 A는 경비대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경비대원들에게 심하게 발길질을 당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청진시 농포 집결소(1999). 증언여성 B(30대 중반) ; 집결소 구금자의 80%가량은 여성이었고, 그 중 12명가량이 임산부였다. 경비들이 임산부들의 경우 「배신자의 자식」을 뱃속에 가졌다는 이유로 음식이나 물을 잘 주지 않았다. 하열을 일으키기 위해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 B는 몇 명의 임산부들이 끌려 나가, 낙태를 위한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다시 농포 집결소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 후 출산을 위한 준비된 방에서 4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들은 바구니에 담겨 비닐에 싸인 채 근처의 창고에 죽을 때까지 방치됐다.》 《청진시 농포 집결소(2000). 증언여성 C ; C는 8개월 된 태아 3명이 낙태되고 7명의 아이들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다.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을 바닥에 뒤집어 눕혀놓았다. 어떤 아기는 즉시 사망했고, 어떤 아기는 계속해서 숨을 쉬었다. 이틀이 지난 후에도 생존해 있는 아기들은 경비대원들이 데려다가 젖은 비닐봉지에 넣어 질식시켰다. 다른 방의 문에 서 있던 女수감자들은 방바닥에 눕혀져 있는 아기들을 볼 수 있었다.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이 중국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산모들이 아기들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 들어야 된다고 말하곤 했다.》 《온성 노동단련대(2001년). 증언여성 D(38) ; 10명의 임산부가 강제낙태를 당한 후 바로 다음날 강제노동에 투입되는 것을 목격했다.》 <남한 노래 불렀다고 정치범수용소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은 형법62조 「조국반역죄」 233조 「비법국경출입죄」 적용 여부를 조사받는다. 그리고 남한 행을 시도했거나, 중국에서 남한사람이나 종교인을 접했거나, 중국에서 1년 이상 체류하면 즉결처분 또는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북한은 평남 개천14호, 함남 요덕 15호, 함남 화성 16호, 함북 회령 22호, 함북 청진 25호 등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운영하는 5곳의 정치범수용소가 있다. 여기 수용된 인원은 20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정치범수용소는 남한 행을 시도한 탈북자 등 북한체제 내 소위 「반동」들이 수용된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은 「연좌제」로 끌려 온 가족들이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의 「2004년 북한정치범수용소 수감자·행불자 조사보고서」의 요덕수용소 수감 617명 분석 결과에 따르면, 수감자 60% 가까이가 연좌제로 수용됐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무너진 舊소련이나 동유럽에서 일했던 외교관이나 유학생들도 끌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金日成·金正日의 사진을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혹은 남한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잡혀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열아홉 살 때 호기심에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체포돼 요덕 15호 관리소에서 약 1년 반 동안 수감생활을 했던 탈북자 안혁씨의 증언이다. 『정치범으로 잡혀 들어오는 사람들은 金日成 사진에 잉크 방울을 떨어뜨렸던 사람들, 그리고 해외에서 유학도중 서양 여자와 춤을 추다 키스를 한번 한 죄, 金日成 사진에 먼지가 깔렸는데 그걸 안 닦은 죄, 가족이 같이 TV를 보다가 金正日이 나오는 사진을 보고 저거는 진짜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얘기 했는데 아들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 우리아버지가 그건 진짜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고 그러면 온 가족이 잡혀오는 경우도 있었다』 <정치범은 3대를 멸종시켜라> 金日成은 1958년 연안파·소련파·국내파를 숙청하면서 『정치범은 3대를 멸종시키라』고 했다. 정치범은 북한정권의 『적(敵)』으로, 정치범수용소는 『적구(敵區)』로 간주된다. 소위 멸종의 대상이자 적들인 정치범들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을 보내야 한다. 최근에는 북한의 주민들에 대한 폭압이 강화되면서 「정치범수용소」와 여기 수감된 「정치범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해진다5). 요덕수용소 내 50% 정도인 「혁명화구역」은 2002년 이후 모두 「완전통제구역」으로 바뀌었다. 혁명화구역은 살아서 나올 수 있는 지역, 완전통제구역은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지역이다. 단순 탈북자 수용소였던 「함북 전거리수용소」는 정치범수용소로 바뀌었고, 경제범수용소였던 「함남 대흥수용소」 일부지역도 정치범수용소로 바뀌었다. 일부 고위탈북자들은 기존의 20만 정치범은 옛날이야기이며, 지금은 30만 정치범이 있다고 증언하기도 한다. 정치범수용소 외에도 함북, 평북, 양강도, 자강도 국경지역의 도 보위부에서는 「뱀굴」이라 불리는 지하 감옥이 운영된다. 이곳에서는 비밀처형을 비롯한 각종 고문이 행해진다. 탈북자들은 『3개월 이상 먹을 것도 주지 않고 고문하면서, 죽으면 그대로 매장해 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증언한다. 북한은 함북길주군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하면서 주민대피령조차 내리지 않았다. 만탑산 부근 지하갱도를 파는 과정에서 함북 화성수용소의 정치범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경비병 출신인 안명철씨는 『핵실험을 한 함북 만탑산 부근의 지하갱도를 파는데 정치범들을 동원했다』며 『87년에서 94년까지 동원된 정치범은 1만 여 명에 달한다』고 증언한다.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정치범 중 30% 이상은 탈북관련 정치범이다. 단순탈북자는 대체로 6개월 이하 노역에 처해지지만, 기독교를 접했거나 한국행이 명백한 자는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진다. 올해 들어 탈북자 처벌이 강화되면서 단순탈북자도 웬만하면 정치범으로 처리되고 있다. <각목을 뒷무릎에 끼운 고문> 정치범들은 만성적 굶주림으로 식용풀·개구리·뱀·쥐·도룡뇽·지렁이·다람쥐 등을 잡아먹는다. 白書에 나오는 탈북자 김은철씨는 정치범수용소 수감생활 3년간 자신과 같은 구역 수감자 240명 중 절반이 굶어죽었다고 말했다. 하루 12~15시간 이상의 강제노동도 부과된다. 탈북자 안혁씨가 쓴 「요덕리스트」 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첫 번째 할당작업은 수용소 내의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나는 자갈들을 건져내기 위해 얼음을 깨고 허리까지 물이 들어오는 차디찬 시냇물을 제치고 들어가는 일과 물살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 널빤지를 대는 것도 포함되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살인적인」 건설작업이었다. 실제로 수십 명이 동상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더 많은 수의 수감자들은 동상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잃기도 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자살자를 비롯해 정신병·결핵·간염환자가 속출한다. 정신병·결핵·간염환자는 격리되지만 치료도 없고, 노동도 줄지 않는다. 결국 이런 병에 걸리면 대부분이 죽어나간다. 보위부원들은 자의적 판단에 따라 폭력을 행사한다. 정치범이 사망하더라도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다. 정치범들은 통상적 조사과정에서 온갖 고문을 당해야 한다. 白書는 『조사과정에서 예상된 답변이 나오지 않자 닥치는 대로 몽둥이로 때렸다』『각목을 뒷무릎에 끼우고 앉아 있게 하는 고문』『달궈진 쇠 철판 위에 무릎을 꿇게 하는 등의 고문』을 당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싣고 있다. <연애·임신·출산은 범법행위>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정치범들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金日成 교시로 인해 임신과 출산이 금지된다. 따라서 수용소 안에서의 연애·임신·출산은 중대한 범법행위에 해당한다. 변방의 구류장과 마찬가지로 여성 정치범이 임신을 하면 강제 낙태시키고, 출산을 하면 영아는 살해된다. 연애·절도 등을 저지른 소위 중범자들은 수용소 내 구류장으로 끌려간다. 남녀를 불문하고 삭발한 후 매를 때려 초죽음을 시킨다. 새벽 5시에 기상해 밤 12시 취침 때까지 식사시간·대소변 시간을 제외하곤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야 한다. 식사라곤 100g 강냉이밥과 시래기 소금국이 전부이다. 두 무릎 사이에는 각목이 끼어진다. 움직이면 흉기를 사용한 무차별 폭행이 가해진다. 白書는 구류장 고문을 목격한 한 탈북자의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 『굶주림과 고문으로 두 발로 걸어들어 갔다가 네발로 기어 나온다. 그러나 상당수는 죽어나온다.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움직이면 처벌로 밥을 주지 않는다. 수감자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일주일 후부터는 살이 썩어 들어가는 데도 무릎을 꿇고 참아내야 한다. 그 결과 3개월 후에는 폐인이 된다. 들것에 실려 나와도 5개월 후에는 병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매장 前 목 동맥 잘라 묻어』> 정치범수용소에서는 공개처형·비밀처형·즉결처형이 자행된다. 영하20도에서 얼려 죽이는 형벌, 총으로 뇌수를 때려죽이는 형벌, 오줌으로 전신을 목욕시키는 형벌, 돌로 쳐 죽이는 형벌, 생매장하는 형벌이 저질러진다. 『일본으로 편지를 쓰다 발각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던 중 사해된 김OO』『햇빛쪼이기를 하면서 풀을 뜯어 먹는 정치범을 AK58식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턱과 등을 내리쳐 현장에서 살해했다』『영하 30도가 넘는 추위에 귀를 막고 가다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트럭으로 치어서 살해했다』『작업 중 감자를 훔쳐 먹으러 갔다가 붙잡혀 공개 처형당했다』 등 탈북자들이 수용소 내에서 목격한 처형사례들을 白書는 적고 있다. 탈북자 안명철(94년 탈북, 회령22호 관리소)은 「그들이 울고 있다」라는 책에서 『보위부원들이 정치범을 생매장하기 전 칼로 정치범의 목 동맥을 잘라 묻어버렸다』『경비대가 기르던 개가 어린 소년들을 잡아먹기도 했는데 오히려 개를 잘 키웠다고 칭찬을 받았다』『쇠줄로 코를 꿰고 발뒤축에 대못을 박아 정치범들을 동원하여 돌로 때려죽였다』는 등의 목격담을 적고 있다. 데이빗 호크가 쓴 「감춰진 수용소」에 등장하는 탈북자 이영국(99년 탈북. 요덕15호 관리소)씨는 탈출을 기도했던 한승철이라는 수감자의 공개처형 장면을 이렇게 증언한다. 『한승철은 모든 수감자들이 보는 앞에서 차의 뒤에 묶인 채 죽을 때까지 질질 끌려 다녔으며, 이어 다른 모든 수감자들은 그 옆을 지나가면서 피로 뒤범벅된 시체에 억지로 손을 갖다 대어야 했다. 안성은이라는 또 다른 수감자가 이 끔찍한 일에 반발해 소리쳤을 때 그는 즉시 총에 맞아 죽었다』 탈북자 김용(99년 탈북. 개천14호 관리소)씨의 증언이다. 『2년 동안 15명 정도가 간수들에 의해 처형됐고, 더 많은 수가 탄광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한번은 김철민이라는 사람이 허가 없이 탄광 입구에 있는 나무에서 떨어진 밤을 주웠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굶주림에 내몰린 또 다른 수감자 갈이용은 가죽 채찍을 훔쳐다가 물에 불린 다음 연한 가죽 부위를 씹어 먹은 것이 발각되어 배설물이 잔뜩 묻은 몽둥이로 입 주위를 세게 맞고 사망했다』 정치범 수용소 내 심각한 굶주림은 수감자들 사이에서 다수의 밀고자를 양산한다. 내부 분위기가 불신과 적대감으로 가득 차는 것은 필연적이다. 수감자들은 음식의 찌꺼기를 놓고 격렬하게 싸우며 때로는 죽은 사람의 의복을 놓고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수용소 전반에 걸친 이 같은 비정상적인 수감자들의 행동양식은 사람을 짐승처럼 다루는 데서 기인한다. <金正日 가계 소문 퍼뜨리면 수용소로> 정치범수용소에서 짐승처럼 죽어가는 이들은 어떤 죄를 지은 사람들일까? 통일연구원의 「북한인권백서2007」은 『정치범수용소 수감 대상은 국가전복음모죄, 반동선동선전죄, 조국반역죄』 등이라며 구체적으로 이렇게 예시한다. △정치범죄 뿐 아니라 金日成·金正日 가계 및 사생활 정보 유포시킨 간부, △金日成·金正日 정치 비난한 사람, △金正日 비자금 조성에 부정적 영향을 준 사람, △비자금 조성관련 비리 연루자들, △한국방송 청취자나 3국에서 한국에서 접촉한 사람들, △중국에 친척방문 후 기독교 등 종교단체에 연루된 사람들, △친목회·계와 같은 사적 결사 연루자들 「북한인권백서2007」은 『정치범수용소에는 심지어 「이 세상 힘들어 못 살겠다」는 말을 한다든지 「상점에 비누 한 장, 치약 한 개 파는 것이 없으니 이곳이 상점이냐」고 항의했다가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며 『정치범수용소 수감 시 일체의 재산을 몰수당한 후 야간에 전 가족이 끌려간다』고 적고 있다6). <북한 全지역에서 공개총살형> 북한은 정치범수용소 외에도 全지역에서 공개총살형이 자행된다. 일본 아사히TV는 2006년 9월20일 같은 해 7월10일 함주군 주의천 인근에서 집행된 함경남도 함주에서 옥수수 10kg을 훔치다 살인을 저지른 편직공장 여성 노동자 유분희(나이 미상)의 공개총살 장면을 담은 현장 동영상을 방영했다. 이날 공개총살은 주민들이 집결한 뒤 사회자가 공개처형과 각종 범죄를 처벌하는 「군중투쟁」(군중에게 각성을 주기 위한 대회) 개회선언으로 시작됐다. 이어 25분 후 끌려 나온 유씨 외 24명의 혐의자들에 대한 재판과정이 끝나고 유 씨에 대한 총살이 신속히 진행됐다. 유 씨가 나무에 묶일 때는 주변에서 『눈 막았다』 『눈 저렇게 싸매는 구나』 『(보안원)세 명만 남았구나』라는 말이 들린다. 그리고 총살집행과 동시에 주변에서 『아-』하는 짧은 비명이 흘러 나왔다. <공개처형 갈수록 늘어> 북한정권이 「공개처형」을 갈수록 강화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최근 발표한 「2007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북한 내 공개처형·비밀처형을 의미하는 사법적 집행은 전체 생명침해 인권유린 중 42.3%(70년대)→73.1%(80년대)→89.5%(90년대)→ 90%(2000년대)로 계속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소위 사법적 집행에서 공개처형이 차지하는 비율은 92.2%로서, 이 통계는 북한 내 공개처형이 심해지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공개처형은 형사범(전체 공개처형 중 55.5%) 이외에도 정치범(16.5%), 경제범(7.6%), 국경관리범죄(탈북, 9.8%)의 비율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굶주리다 못해 식량을 훔치고, 소를 팔아먹고, 전기선을 끊어 팔고, 도강(渡江)에 나서는 경우가 모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범죄인 셈이다. 실제 통일연구원이 지난 달 펴 낸 「북한인권백서2007」은 △2006년 5월 전기선 150m가량을 내다 판 제대군인의 공개처형 사례, △2000년 소를 잡아 팔았다는 죄목으로 공개 처형된 사례 등 다양한 예시들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영화 판매해도 처형장으로> 최근에는 남한의 방송, 노래, 비디오 접촉자들에 대한 공개처형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연구원의 「북한인권백서2007」이 보여주는 사례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04년 OOO씨 중국에서 비디오 3,000여개를 들여와 팔다가 공개처형, △2004년 11월 황OO씨 한국영화·비디오 판매한 죄목으로 공개처형, △2005년 1월 32세 OOO씨 한국방송을 듣고 한국노래를 불렀다는 죄목으로 공개처형, △2005년 1월 再탈북을 기도하던 11명 공개처형, △2006년 5월 CD녹화물과 빙두(마약의 일종) 밀매하던 장사꾼 공개처형 <일곱 살 위는 맞아죽고, 그 아래는 굶어죽었다> 북한은 스스로 거지나 부랑자가 없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굶주리는 꽃제비들을 시·군마다 설치된 2·13수용소, 9·27수용소 등에 수감된다. 꽃제비들은 북한에서 장마당이나 역전 등을 헤매 다니며 음식을 구걸하거나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어린이들을 가리킨다. 2·13, 9·27은 金正日이 꽃제비들을 잡아 가두라고 지시한 날이다. 올 초 북한당국은 식량난으로 국경지역에 몰려들었던 2천여 명의 꽃제비들을 다시 강제 송환했다. 아직도 국경연선에는 타 지역에서 온 1천여 명의 꽃제비들이 숨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당국의 「인간사냥」은 아직까지도 계속 되고 있다. 잡혀 온 꽃제비들은 시·군 단위에 1개소 씩 있는 2·13수용소, 9·27수용소 등으로 수용된다. 죄도 없이 끌려온 아이들은 일상적 폭행에 시달린다. 물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한다. 400명 정도가 수용됐던 한 수용소에서 벗어나 2003년 탈북 한 한 소년은 이렇게 증언한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파 약을 달라고 하면 약 한 알이나 꽃 같은 것을 먹으라고 주는 정도였다. 한 달에 1~2명 정도씩 죽었는데 일곱 살 정도 아래는 굶어서 죽고, 그 이상은 맞아서 죽었다. 허약(영양실조)에 걸려 있으니 각목으로 머리를 한 대만 맞아도 고꾸라져 죽기도 한다. 아이들이 죽으면 안전원들은 자기들이 꾸며낸 문서에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쓰고 안전부 도장을 찍어 처리하는데 시체는 사체실로 보낸다. 사체실에 시체가 쌓이면 차로 바깥으로 옮겨 산에 가져가 구덩이에 모두 묻는다』 2002년 UNICEF·WFP와 북한당국이 공동으로 실시한 어린이 영양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표본 어린이 6,000명 중 20.15%가 저체중, 39.22%가 만성영양장애, 8.12%가 급성영양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쟁이들의 종자를 퍼뜨리면 안 된다』> 북한에서 장애인들은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 우선 거주지역이 제한을 받는다. 특수지역인 평양과 함께 외국인의 출입이 잦은 남포, 개성, 청진에 장애인이 거주하는 것이 강력히 제한된다. 白書에서 인터뷰한 100명의 탈북자 중 58명은 장애인임을 이유로 추방 또는 강제 이주된 경우를 들었거나 목격했다고 답했다. 황장엽씨의 증언에 따르면, 60년대 金日成은 『난쟁이들의 종자를 퍼뜨리면 안 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 두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함경남도 정평군에 난쟁이수용소가 설치되었다. 통일연구원 2006인권백서에도 함경남도 영광군에 선천성 기형아 격리수용시설이, 자강도 산골·양강도·강원도 등지에 난쟁이수용소·소아마비 410호 수용소가 있다고 기록돼 있다. 물론 장애자가 태어나면 아이를 강제로 질식시키거나 깔아뭉개 죽이는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난쟁이는 불임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겨울에 창궐하는 온갖 역병들> 북한은 한 겨울 아닌 전염병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성홍열,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발진티푸스...평양을 비롯한 전 지역에 역병이 창궐한다는 것이다. 청진, 회령 등 함경북도 일대는 공황 상태라고 한다. 의료조사단이 상황파악에 나섰지만, 나눠 줄 기초 약품조차 없다고 전해진다. 전염병 확산의 일차적 원인은 「물」 이다. 깨끗한 식수가 공급돼지 않고, 더러운 오수가 빠져나가지 않으니 시궁창 같은 환경에서 질병이 번져간다. 상하수도 처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은 「전력(電力)난」 때문이다. 그러나 식량난과 마찬가지로 전력난의 원인제공자는 金正日이다. 우상화(偶像化)에 국가예산의 40%를 사용하고, 나머진 무기개발에 돈을 쓰느라 식량을 사지 않는 것처럼, 북한은 80여 곳에 달하는 특각, 소위 金正日 별장을 24시간 밝히는 등 온갖 당 기관에 전체 전력 40%를 사용한다. 간단한 계산이 가능하다. 70개의 金日成 동상, 80개의 金正日 별장, 3만5천 개의 金부자 흉상, 45만 개의 혁명사상연구소 등에 들어가는 전력만 아껴도 북한의 상·하수도를 돌릴 전기는 충당할 수 있다. 역병에 죽어가는 죄 없는 어린아이, 부녀자들을 죽이는 것은 바로 金正日 정권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국제인권기구들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북한은 ▲육아여성 3분의 1이 영양실조 상태이거나 빈혈증세가 있고 ▲14세 북한소년의 몸무게는 남한 8세 아동과 비슷하며 ▲11세 북한소년의 키는 남한 4세 아동과 비슷하고 ▲5세 미만 아동들의 77.9%의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5세 이하 유아사망률이 50%나 된다. 4. 對北인도적지원의 허구성 현재에도 對北민간지원의 70% 이상은 기독교계가 차지하며, 북한의 지난 해 10월 핵실험 이후에도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7). 8월 노무현·金正日 평양회담이 확정되면서 정부는 물론 민간NGO에 의한 소위 인도적 對北지원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인도적 對北지원은 대부분 북한의 군부(軍部)와 특권층(特權層)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물의를 빚어왔다. 결과적으로 金正日 정권의 폭압(暴壓)을 지속시키고, 북한인권 탄압(彈壓)을 계속케 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부지원물자, 군부(軍部)에 우선배분> 실제 「선군(先軍)정치」라는 「군사제일주의」 노선 아래서 북한 내 모든 물자는 군대가 우선 사용하며, 인도적 지원물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북한전문가인 이영화 日本간사이대 교수는 『북한 지원 물자의 50~70%가 군부대로 먼저 흘러간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탈북자들의 주장과 대체로 일치한다. 예컨대 남포항에 외부에서 지원된 식량이 도착하면, 군대마다 식량담당이 「전진공급」이라 하여 먼저 가져온다. 다른 기관은 수송능력(輸送能力)이 없어, 군대보다 앞선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등에서 지원된 비료의 1차 공급대상은 軍부대 농장, 2차 공급대상은 金日成·金正日 현지 지도 단위농장이며 기타 농장에서는 비료를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日TV, 한국 쌀 軍창고 비축장면 방영> 일본 후지 TV는 지난 해 9월11일 북한 내부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탈북자가 내부에 잠입해 촬영한 이 동영상은 같은 해 5월말 함경남도 단천市의 모습이었다. 여기는 한국이 지원한 쌀이 트럭에 실려 軍부대로 옮겨진 후, 軍창고에 비축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단천역 인근 한 장소에는 「先軍정치 바람에 인민들이 굶어죽는다! 군대들에게만 주지 말고 인민들부터 쌀을 달라!」는 벽보가 붙어있는 장면도 나온다. 지난 해 11월3일 작성된 「위대한 령도자 金正日 동지께서 군수(軍需)동원 총국장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북한 내부 자료는 「한국에서 쌀이 오면 군량미로 보충하라」는 金正日의 지시가 나온다. 당시 언론에 보도됐던 자료 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말씀 자료=김 위원장은 군수동원 총국장을 접견, 『보고 된 자료를 보니 당에서 세운 (전쟁 예비 식량) 목표의 83%를 확보하였다고 하는데…』라며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 식량을 지원해 줄 전망이 없지만 결국 남조선에서 식량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부족 되는 식량은 쌀이 들어오면 더 보충하도록 합시다』라고 말했다.』 <金正日에 충성하는 핵심(核心)계층에 배분> 인도적 지원물자는 군대 이외에도 평양에 거주하는 당(黨)·군(軍)·내각(內閣) 등 「핵심(核心)계층」으로 불리는 특권(特權)계급에 독점적으로 돌아간다. 金正日에 충성하는 이들에게 배급돼서, 북한정권을 지탱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주로 평양에 거주하는 특권계급은 지원물자를 독식한 뒤, 일반주민에게 비싸게 되파는 「돈벌이」에 나선다. 북한식 부패(腐敗)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장마당에서 한국 쌀은 「대한민국」 마크가 찍힌 포대 째 팔리기도 하고, 포대 없이 쌀만 팔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북한 시장에서 팔리는 쌀의 80% 이상은 한국과 유엔 등에서 들여온 쌀이라고 지적한다. 홍민 동국대 북한학과 강사는 「북한의 시장교환 질서와 비도덕적 가족주의화」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북한주민들의 장터경제가 간부들의 정치자본을 활용하는 공간으로 부상하면서 주민들에게 약탈적으로 기생하는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다』며 『특권층의 기생방식은 「마피아 부족주의」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어린이용 우유가루까지 특권계급 독식> 특권계급에 빼돌려지는 것은 식량 뿐 아니다. 의류, 신발, 식료품 등 일상 물건도 마찬가지다. 한국NGO들이 굶어죽는 북한 어린이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지원한 어린이용 우유가루 등도 再포장돼 평양에 외화상점에서 팔리고 있다는 목격담도 전해진다. 탈북자 김영순(가명·2003년 입국)씨의 증언이다. 『남한에서 보낸 내의류가 1999년과 2000년에 평양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여성용 내의, 팬티, 브래지어, 양말과 남성용 옷, 양말 등이 들어 있었다. 「조선인민군 협주단」 남성 합창단원들에게는 1인당 양말 20켤레씩 공급했다. 이 옷들은 평양시 가정별로 「국정가격」으로 공급했다. 평양주민들은 다시 2~3배 가격으로 높여 이를 지방에 팔아 이익을 챙겼다.』 <의약품도 軍부대로 간 후 빼돌려져> 의약품(醫藥品) 역시 軍부대 병원에 우선 지급되고, 간부들은 암시장에 내다판다. 그나마 남겨진 의약품은 각 지역 병원으로 보내지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가로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국제사회가 북한에 아무리 많은 의약품을 지원해도, 일반 병원에는 약이 없다. 북한주민들은 병원에서 알선한 개인집에서 시장가격으로 사먹어야 한다. 평양시에 위치한 모 병원원장으로 40년 이상 근무한 탈북자 김순임(가명·2006년 입국)씨는 『국제사회에서 지원하는 의약품들은 북한군에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의약품들마저도 하부 말단 병원들까지 전달되기 전에 대부분 빼돌려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증언했다. <탈북자 중 40%는 對北지원 사실조차 몰라> 당연한 결론이지만, 핵심계층을 제외한 북한주민의 절대다수에 해당하는 소위 적대(敵對)·동요(動搖)계층에게는 인도적 對北지원이 돌아가지 않는다. 세계식량기구(WFP)는 2005년 북한 내 최대 600만 명까지가 지원대상이라고 밝혀왔지만, 수많은 탈북자 중 WFP의 쌀을 지원받았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장윤옥 연구원이 2006년 12월7일 발간한 「탈북자 위기, 인권과 국제사회의 대응」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 간 국제사회가 對北지원을 했음에도 탈북자 가운데 약 40%는 국제사회의 對北지원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4년 8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선양 등 중국과 북한 국경의 9개 지역에서 탈북자 1천34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이다. <국방연구원, 『인도적 지원, 資源절약시켜 軍備증강』> 북한정권은 인도적 지원물자로 절약된 달러를 가지고 무엇을 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무기(武器)개발이다. 한국 등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으로 필요한 물자를 충당한 뒤, 「아낀 달러」로는 식량(食糧) 대신 무기를 사들이고, 만들어온 것이다. 국방연구원은 2003년 발간한 「북한경제위기 10년과 군비증강능력」에서 『인도적지원은 국내자원의 절약(節約)이 아니면 여타 민간의 수입소요 절감(節減)을 통해 결국 군사적 가용자원을 늘려주게 된다』며 국제적 지원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이 필요로 하는 외화를 절약(節約)시켜 줄 것이므로 「궁정경제」의 금고에 여유를 제공, 궁극적으로 군비능력을 제고시킨다』고 지적했다. <인도적 지원으로 절약(節約)된 달러로 武器개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팬턴 사무총장은 「굶주림과 인권」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외부의 인도적 지원이 증가함에 따라, 북한정권의 식량수입이 점점 줄어들어 원래 수입량의 1/10까지 줄어들었다』며 『북한정권은 인도적 지원을 보완적(補完的)인 식량공급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절약된 외화를 무기(武器)수입이나 고위간부들의 사치품(奢侈品)을 위해 사용했다. 한 예로 1999년에 북한정권은 식량수입을 20만t 이하로 줄이는 대신 남은 외화로 미그21기 40대와 헬리콥터 8대를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구입했다』고 적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6월11일자는 『UNDP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북한에 「외국과의 교역 및 투자확대를 위해 쓰라」며 제공한 자금 중 270만 달러는 대천상업은행의 장비마련에 사용됐는데, 대천상업은행은 북한이 탄도미사일 등 무기(武器)부품을 구입하는 창구 역할을 하다 2005년 미국과 거래가 금지된 곳』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은 『UNDP가 북한 독재자의 개인은행 역할을 해왔다』며 『이를 계기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식량부족 100만t...비축된 군량미만 150만t> 「인도적 지원」이 결국 「무기개발 지원금」이라는 사실은 지난 해 核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2006년 7월 일곱 발의 미사일 발사 비용은 약 6,000만 달러(600억 원). 같은 해 10월 한 발의 핵탄두 실험에는 2억8천만 달러~7억9천만 달러(2,570억~7,258억 원)가 들어갔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국방부가 직접(直接)비용만 추정한 액수다. 태국산 쌀(안남미)은 1t당 320달러 정도이며, 북한주민 주식인 옥수수는 1t당 100달러이다. 일곱 발 미사일 발사 비용으로 19만 t의 안남미, 60만 t의 옥수수를 살 수 있고, 핵실험 비용으로는 88만t ~ 247만t의 안남미, 280만t ~ 790만t의 옥수수를 살 수 있다. 북한은 지난 3월 방북한 WFP 관계자들에게 『올해 100만t의 식량이 모자라다』며 외부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만 안 했다면, 모자라는 식량 100만t을 충당하고도 최대 147만t의 안남미 또는 890만t의 옥수수가 남았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북한에서 매년 100만t 정도의 식량이 모자란다고 가정한다면, 핵실험으로 10년 치에 가까운 옥수수를 날려버린 셈이다. 현재 북한이 비축하고 있는 군량미만도 약 150만 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인도적 지원은 북한으로 하여금 「식량수입을 위한 달러」를 「무기개발용 달러」로 전용케 한 무기개발 지원인 셈이다. <『대한민국 표시는 일부러 없애지 않는다』> 소위 인도적 對北지원은 수령독재를 유지하는 선전용으로 악용된다. 對北지원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뤄지고, 소위 『수령님에게 바친 것』으로 선전되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주민들은 외부에서 오는 물자를 일종의 「전략적 노획물」 정도로 알고 있다. 「우리의 위대한 장군님이 21세기 태양이기에, 세계 최강군사국이기에 두려워서 지원을 해 준다」는 식으로 세뇌된 결과이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의 증언을 들어보자.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정치에 의해 응당 빼앗아 온 것쯤으로 본다. 쌀 들어올 때 「대한민국」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이것을 빼앗은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선군정치에 의한 노획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런 표시가 있는 것이 북한당국에는 오히려 더 좋다. 한국정부는 그것을 성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이 빼앗아 온 것으로 주민들에게 교육을 다 시켰기 때문에, 「대한민국」 표시를 없애지 않는다.』 <모니터링은 불가능하다> 對北지원단체들은 주위의 비난에 대해 흔히 모니터링 운운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차별배제」와 「필요에 따른 분배」 등 분배의 투명성을 강화하려던 세계식량기구(WFP)의 감시요원들은 2005년 12월 강제 추방됐다. NGO가운데서도 모니터링을 요구하면 북한정권에 노골적 방해를 당해야 한다. 북한정권이 모니터링을 거부하는데 북한정권을 거스르면서 모니터링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일 북한정권을 거스르면 북한 땅을 나와야 한다. 국제여론을 기만하기 위한 온갖 위장술도 동원된다. 예컨대 인도적 지원물자를 우선적으로 실어가는 곳은 군대이다. 이때 각 군부대는 차량번호판을 일반차 번호판으로 바꾸고, 사복차림으로 부두에 들어가 곧바로 쌀을 받는다. 전 국경경비대 副분대장 김철민(가명·2003년 입국)의 증언이다. 『軍복무 중 쌀을 공급 받으러 청진항으로 여러 번 갔었다. 청진항에 유엔 등지에서 쌀이 들어오면 차를 갖고 먼저 들어가는 것이 對南연락소와 국경경비대 트럭이었다. 당시 외국 사람들이나 남한 사람들이 배를 따라왔는데, 하역 장면을 찍고 있었다. 군대 트럭에 사회에서 통용되는 번호로 바꾸어 달고 항구에 들어간다. 당연히 견장 떼고 군복을 뒤집어 입고 쌀을 하역해 트럭에 실었다.8)』 주민들에게 허위증언도 강요된다. 예컨대 국제기구 등 사찰단이 우유를 지원해 준 유치원을 방문하면, 유치원 아이들한테 『우리는 우유를 매일 먹고 밥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말하라고 거짓말 시킨다. 사찰단이 가면 유치원 교양원과 원장들, 비서들이 자기들 몫 얼마를 떼어내 나누어 챙긴다. 다음 날이면 당에서 모두 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배급소나 유치원이나 마찬가지다. 탈북자 A씨(2003년 입국)는 『남한에서 국수공장이니 빵 공장이니 지어주면 3.8탁아소 등 당국이 특별히 지정해 주는 곳만 공급된다. 또 유엔에서 사찰단이 들어오면 영양 상태가 좋은 어린이들을 앞에 세우고 부족한 애들은 뒤에 세웠다9).』고 증언했다. 탈북자 B씨(2003년 입국)는 『함흥시의 각 구역에서 성천강 제방 공사에 동원되었을 때는 함흥시 간부가 미리 준비된 사람들을 모아놓고 『유엔기구 사찰단이 이제 공사장에 올 것이니, 그들이 물어오면 쌀 2kg씩 공급받았다』고 말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탈북자 C씨92006년 입국)는 『2003년에 독일에서 소고기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1인당 4kg씩 나눠줘야 하는데 결국 한 가구당 200g씩 줬다. 갑자기 인민위원회에서 나와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는데, 유엔에서 확인이 나오니 1인당 4kg씩 받았다고 답하라고 강요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수표(서명)도 했다』고 증언한다. 대북지원단체장인 D씨는 『북한 지방의 한 군에 물품을 전달해 주었는데 한국의 지원단체가 돌아간 후 중앙 간부 지시로 물품의 절반 이상을 평양으로 이송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북한주민들 속에서 통용되는 말이 하나 있다. 『지나가는 돈도 가로 챈다』는 말로 이는 남한에서의 「착복」 개념으로서 북한 내 사회특성상 특권층의 외부지원물자 갈취의 의미이다. 통일연구원 서재진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북한 체제는 소수의 전위대에 특혜를 줘 「고마운 장군님(金正日)께」 충성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게 한다. 일반주민에게는 몽둥이를 들이대고 철퇴를 안기는 혹독한 시스템이다. 소수의 전위대는 권력기관 계층들을 비롯하여 금강산, 개성공단과 같이 외부와 접촉하는 계층들로서 이들에게 특혜를 주는 동시에 철저한 관리를 한다. 중국 등으로부터 외부정보의 유입이 있지만 내부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김운근 통일농수산정책연구원장은 『많은 정치인· 민간단체·대권주의자들이 오직 일신의 영달을 꾀하기 위하여 한탕주의식 사고로 대북접촉을 함으로써 큰 국익손실을 가져왔다』며 『최근 우후죽순처럼 경쟁적으로 생겨나는 단체들은 전문가라기보다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5. 민족공멸이냐 북한해방이냐? <金正日이 내년엔 죽는다는데> 하이힐 벗은 실제 신장 157.5cm, 실제 체중 90kg. 나이 65세. 金正日 건강이상설이 계속 나오고 있다. 6월 말 방북한 포드(Ford) 유럽의회 의원은 7월10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이렇게 말했다. 『金正日은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가 심장 관련 수술을 받았을 것으로 믿고 있다. 金正日이 완전히 회복했는지, 정상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방북 때 金正日을 직접 만나진 못했다. 그러나 평양 주재 유럽연합(EU) 외교관들과 관찰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金正日이 최근 공식 석상에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실제 7월3일 중국 양제츠 외교부장을 만나며 2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낸 金正日은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고 눈에 띄게 수척한 모습이었다. 전문가들은 내년 아니면 내후년 金正日 돌연사(突然死)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金正日의 돌연사는 북한의 급변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이렇다. 식량難, 외화難, 에너지難, 사회간접자본(SOC)難 등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딜레마에 시달려 온 북한은 사회주의 기본골격인 배급제, 무상(無償)교육, 무상(無償)의료 등 당(黨) 기능이 완전 붕괴(崩壞)된 상황이다. 민심이반(民心離叛)도 극심하다. 후계체제(後繼體制)마저 세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권력(權力)의 구심(球心)인 金正日이 죽는다면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소위 「북한 급변사태」 발생이다. 50년 넘게 북한을 지근거리에서 관측해 온 중국과 러시아 소식통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북조선은 70년 대 말 남조선 유신체제 마지막과 유사하다』 폭풍전야(暴風前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日本방위청 다케사다 히데시의 말처럼 북한 권력의 무질서(無秩序)사태인 「Hard Crash」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내전(內戰)으로 발전할 수 있다. 현재 북한체제 유지의 핵심인 군대가 권력다툼 와중에 분열(分裂)될 수 있고, 수구(守舊)세력을 편드는 군대와 혁명적(革命的) 입장의 군대로 갈라설 수도 있다. 이런 저런 형태의 내전은 북한 인권을 더욱 참혹한 상황에 떨어뜨릴 것이다. 물론 내전(內戰)까지 치닫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오랜 기간 잔혹한 인권탄압이 계속돼왔다. 舊체제가 광범한 밀고 망(密告 網)과 정보기관 등에 의해 유지돼 왔기 때문에 산골 마을, 지방 공장에도 온갖 원한이 얽혀 있다. 치안이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면, 보복(報復)과 再보복의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다. 조선로동당은 마지막 순간에 지난 60여 년간 저지른 각종 제노사이드, 계급살해, 인도(人道)에 반하는 죄(crimes against humanity) 등을 감추려 교화소(敎化所), 관리소(管理所), 구류장(拘留場) 등 정치범수용소와 꽃제비수용소에 대한 폐쇄 및 수감자 학살을 저지를지 모른다. 북한 땅의 혼란이 계속되면, 난민들은 국경을 넘고, 중국 군대가 개입할 수 있다. 이것이 중국은 북한을 속국화(屬國化)하고, 남한은 북한의 난민만 떠안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가고」, 남한은 경제적으로 「가는」 남북공멸이다. 사변(事變)을 막을 유일한 길은 韓美동맹 강화와 韓美연합군이 주도하는 UN의 인도적 개입뿐이다. 북한의 급변사태는 UN의 인도적 개입 요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한국은 국제사회의 힘을 빌려 합법적으로 북한 땅을 밟을 수 있다. 金正日 돌연사는 《남북공멸의 길》은 물론 《북한해방의 길》과 《자유통일의 길》 모두 열어놓고 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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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전략센터는 북한주민의 자유와 인권을 되찾고, 북한 내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북한전략센터는 전문가들과 함께 통일 전략을 연구하고, 미래 통일 한국을 준비하는 인재 양성활동, 북한 내부의 민주화 의식 확산사업과 북한 인권상황을 알리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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