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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北者:不投票會槍斃

탈퇴한 회원
2017-08-29
조회수 1325



이름 : NKSC

2014-08-29 10:19:34  |  조회 3053



脫北者:不投票會槍斃

指朝鮮一人一票 一人候選

 

▲ 脫北者池賢娥(前排左)及鄭光日(前排右)上周五來港出席「北韓人權電影節」,一起看電影。
池憶述當日在朝鮮曾擔任選舉宣動隊員,但事實上只有一名指定的單一候選人,不投票者會遭槍決。(胡景禧攝

 

 

【明報專訊】朝鮮(北韓)今年初的國會選舉投票率達99.9%,最高領導人金正恩取得「百分百」選票當選。自2002年逃離朝鮮的「脫北者」池賢娥近日來港,憶述昔日曾為選舉的宣動隊員,呼籲國民「一人一票」投選指定的單一候選人,不投票者會被槍決。曾3次脫北失敗的她經歷過大饑荒、久禁於地獄般的囹圄,如今蛻變為人權記者,誓言以一字一句為仍在「鐵幕」下的同胞向世界疾呼。

북한은 올해초 국회의원선거 투표에서 99.9%을 보였다최고지도자 김정은은 100%로 투표에서 당선되었다. 2002년에 탈북한 탈북자 지현아씨는 최근 홍콩에 와서 북한에 있을 때 선거의 선동대원으로 참여했던 것을 회고했다일인일표 선거는 단일후보를 내놓고 있으며투표하지 않으면 총살을 당한다. 3번 탈북을 실패했던 그녀는 대아사를 경험했고지옥같은 환경에서 지금은 예리한 인권기자로 변신해서 여전히 철의 장막 아래 신음하고 있는 동포들을 위해 전세계에 호소하고 있다.

 

來港出席北韓人權電影節

홍콩 북한인권영화제에 참석하다

 

身穿白衣黑裙的池賢娥年約35歲,外觀打扮與一般韓國女性無異,初次見面難以想像她前半生的艱苦日子。過去兩天,她與另一名脫北者鄭日光來港出席「北韓人權電影節」,只見每當鄭在講述個人經歷之時(見另稿),池賢娥都在旁邊以紙筆書寫,彷彿放不下紀錄者的使命。

하얀색 상의와 검은 치마를 입은 35세의 지현아씨는외관상으로는 한국여성과 다를 바 없었다처음 만났을 때는 그녀가 겪은 고난의 시간들을 상상하기 어려웠다지난 이틀 동안 그녀와 탈북자 정광일씨는 홍콩 북한인권영화제에 참여했다정광일씨가 개인의 지난 이야기를 할 동안지현아씨는 옆에서 기자로서의 사명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글을 쓰고 있었다.

 

池的父親原是生於中國的朝鮮族人,至60年代聽聞朝鮮提供免費教育,隨之前往當地定居兼成家立室。不過「美滿生活」未曾降臨,池賢娥一家五口僅靠父母取得兩三次赴中國邊境的簽證,帶來殘舊的二手衣服和拖鞋變賣。1990年代大饑荒,一家人只能吃草為生,「當時身體癱軟無力,媽媽叫我不要睡,睡了就醒不過來」。

지현아씨의 아버지는 원래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이었다. 60년대에 북한에서 무상교육을 제공한다는 말을 듣고북한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고가정을 이루었다그러나 아름다운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지현아씨 일가족 5명은 아버지가 2-3차례 중국에 건너갔다가 가져온 헌 옷과 신발 등을 팔아 변변치 않게 생활했다그러나 90년대 대기황으로 일가족은 풀을 뜯어먹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몸이 너무 허약해져서 힘이 없었다엄마는 나에게 잠을 자지 말라고 했다잠들면 깨어날 수 없을 거라고’.

 

 

儘管如此,池賢娥未有想過逃離朝鮮,直至父親一次有機會與韓國(南韓)人交談,回家第一句是「我們被欺騙了」,然後在1998年展開首次脫北長征,惜池賢娥與母親和弟妹橫跨圖們江打算逃到對岸的中國吉林省時,被中國公安逮獲遣返,而池父則一去不返,自此音信全無。池賢娥說,當初對父親的言論不甚理解,第二、三次脫北也非刻意,只是「踫着」人口販賣,每次都被公安逮捕,遣返朝鮮入獄。

비록 이런 상황이었지만지현아씨는 북한을 떠날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아버지가 중국에서 한국인과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돌아와서는우리는 속고 살았다고 하셨다그 후 1998년 처음 탈북장정을 시도한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지현아씨와 어머니남동생 여동생은 두만강을 건너자 마자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된다그리고 먼저 떠났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그때부터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지현아씨는 말하길당시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2번째, 3번째 탈북도 인인매매꾼에 속아서 탈북하게 되었는데매범 공안에 체포되어 북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逃亡被捕 獄中吃蟲充飢

도망 후 체포감옥 중에서 개구리벌레로 허기진 배를 채우다

 

在全國大饑荒下,池賢娥口中的脫北者監獄儼如「地獄」,滿載2000人的牢房內只有200人能活下來,監獄中不會分派任何食物和藥品,被囚者只好捉蟲子、青蛙或挖草根填肚,「不少人會拉肚子,但無藥醫治,等於看着他們死去」。池賢娥的朋友也是在監獄離世,隨之被棄於亂葬崗,「只見她(朋友)的遺體被狗啃吃」。

전국적인 대기황 상황 아래에서지현아씨 표현으로는 탈북자 감옥은 지옥과 같았다. 2000명 가량 수감한 감옥에서 단지 200여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감옥 안에서는 음식과 약을 주지 않아서 죄수들은 벌레개구리, 풀 등을 뜯어먹었다. ‘많은 사람들이 설사병에 걸렸는데약을 주지 않아서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지현아씨의 친구도 감옥에서 죽었는데제대로 매장도 해주지 않아서, ‘그녀의 시체를 개가 뜯어 먹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

 

 

看着朝鮮國民受盡非人對待,池賢娥下定決心離開國家,「當時的我沒紙筆,但可用眼睛將看見的記進腦內,我要離開(朝鮮),要為同胞向世界發聲」。池終於在2002年與家人成功脫北,並在2007年由中國丹東逃往韓國,取得韓國公民資格。

북한인민이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지현아씨는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당시에 나는 연필과 종이가 없어서눈으로 본 모든 것을 머리 속에 기억해 두었다내가 북한을 떠나면전세계 사람들에게 고발하려 했다.’고 말한다지현아씨는 2002년에 탈북에 성공했고, 2007년에 한국에 입국하여 한국국민이 되었다.

 

 

 

在韓歷大選 多選擇感惆悵

한국 선거 경험다수 후보에 당황하다

 

 

池賢娥笑言,在韓國經歷兩次總統大選,首次選舉要面對眾多候選人,令她萬般惆悵。她憶述,在朝鮮時曾被徵召為宣動隊員,負責呼籲國民前往投票,而在「一人一票」的選舉制度下,候選人只有一個,也是指定的一個,選民「不可能不投票」,也「不能投反對票」,否則會遭槍決。

지현아씨는 웃으면서 말하길한국에서 2번의 선거를 경험해봤는데처음 선거를 할 때 후보가 너무 많아서 당혹스러웠다고 한다그녀는 기억하기를북한에 있을 때 미성년이어서 선거에는 참여하지 못하고선거 선동대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일인일표의 선거제도하에서후보는 단 한 사람으로 이미 정해져있다투표자는 투표를 안할 수 없고반대표를 던질 수도 없다만약 그렇게 되면 총살을 당하게 된다.

 

 

經歷韓國的真正選舉,早已成家育有兩名子女的池賢娥無忘初衷,成為韓國人權媒體記者,曾出版《為自由走了1000萬里》一書。她亦希望反映對中國人權狀况的不滿,尤其中國政府對脫北者採取遣返機制。

한국에서의 진정한 선거를 경험하면서, 2명의 아이를 기르고 있는 지현아씨는 초심을 잃지 않고인권 기자가 되었고, <자유 찾아 천만리>라는 책도 집필했다그녀는 중국인권상황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현하고 싶어했는데특히 중국정부의 탈북자 강제북송정책에 대한 불만을 피력했다.

 

 

 

2014年8月24日 星期日

明報記者 錢瑋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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